매거진 인상주의

비가 내리면

08- 빈센트 반 고흐

by 유시
고흐, 빗속의 밀밭, 1889, 캔버스에 유채, 73.3×92.4cm, 필라델피아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한 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자, 그의 이상행동에 불안을 느낀 이웃 주민들은 80명의 연서명으로 아를 시장에게 탄원서를 냈다.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달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1889년 5월 고흐는 결국 스스로 생레미에 있는 생폴드모졸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래도 독방과 함께 작업실도 마련해 준 병원 측의 배려로 1년 가까운 요양생활 중에도 그는 여전히 붓을 들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 내려다 보면 병원 주위로 펼쳐진 밀밭을 볼 수 있는데, 고흐는 이 광경을 여러 차례 그림으로 그렸다. 병원 바깥에서도 주위 풍경들을 그렸는데,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어 그림 그렸던 장소마다 표식을 해놓아 실제 풍경과 비교해 보도록 해 두었다.


<빗속의 밀밭>은 호우가 내리는 밀밭 풍경이다. 이 그림은 소재나 빗줄기의 사선에서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고흐는 안도 히로시게의 <빗속의 다리>를 모사하기도 했다. 빗줄기는 그늘진 곳과 빛 받는 곳을 달리하여 때로는 검게, 혹은 회색으로, 또 반짝이는 흰 빛으로 퍼붓는다. 화가는 이 비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시원스럽게 씻겨 내려 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하얀 비는 신심 좋은 화가가 하늘에 바라는 빛의 축복을 축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오는 풍경을 그린 고흐의 그림은 비록 드로잉이기는 하지만 여러 편이 있는데, 모두 인물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생레미에서 그린 것들이다. <비 오는 길에 삽을 들고 가는 세 농부>는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농사일을 하는 농부의 굳굳함을 빌어 화가 자신도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화업에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스스로 다지는 듯하다.

비오는 길에 삽을 들고 가는 세 농부, 1890

<빗속에 아이를 데리고 팔짱을 끼고 걷는 부부>는 그럼에도 외로움 속에서 마치 버림받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기라도 하듯 가족의 따스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빗속에 아이를 데리고 팔짱을 끼고 걷는 부부, 1890

<빗속에서 씨 뿌리는 농부가 있는 들판>은 그 무렵의 고통스러운 순간에서도 씨 뿌리는 농부의 주제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빗속에서 씨 뿌리는 농부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는 화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흑백의 드로잉들은 막바지에 몰린 화가 스스로가 고통스러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이를 타개해 내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자기 제의(祭儀)인 듯이 보인다.

빗속에서 씨 뿌리는 농부가 있는 들판,1890

빗속에서 씨 뿌리는 농부가 있는 들판,1890

1890년 5월 고흐는 생레미를 떠나 파리에 며칠 머물렀다가 다시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옮겼다. 그는 그곳에서 정신질환을 전공한 폴 가세 박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시 풍경화나 초상화를 그리며 생의 마지막 70여일을 보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평야를 그린 이 때 그림들 가운데, 비가 온 뒤의 청명한 풍경을 그린 것으로, <비 온 뒤 오베르의 길>과 <비 온 뒤의 밀밭>이 있다.

고흐, 비온 뒤 오베르의 길, 1890, 캔버스에 유채, 72×90cm,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관

<비 온 뒤 오베르의 길>은 밝고 빛나는 색채로 비 온 뒤의 드넓은 시골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마차가 지나는 길 위로 고인 빗물이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이 절묘하다. 그 뒤로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기차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붉은 지붕은 역경 속의 예술혼을 상징하듯 비 온 뒤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화면 중앙에 고독한 화가의 마차가 붉은 바퀴를 굴리며 홀로 길을 간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절망을 딛고 새로이 출발하고 싶은 그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현실은 이 마차와 기차처럼 서로 어긋난 방향으로 멀어져만 가니 파국은 피할 수 없었다.

<비 온 뒤 밀밭>은 고흐가 죽기 전 1890년 6월과 7월 초에 그린 일련의 밀밭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 역시 비 온 뒤 산뜻하게 개인 쾌청한 푸른 하늘과 연초록의 들판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푸른 하늘의 구름이 기묘하게도 무슨 해일처럼 덮쳐 오는 듯한 착시를 불러 일으킨다.

하늘의 비구름은 점점 먹구름으로 변한다. <먹구름이 낀 밀밭>에서 보듯, 그가 좋아했던 밀밭보다 더 크게 그려진 하늘은 검푸른 색으로 육중하게 밀밭을 덮고 있다. 그 위로 구름 하나가 쫓기듯 황급히 지나가고 있다. 불안했던 생의 마지막 시절에 황량한 화가의 심상이 한여름의 푸르른 밀밭에 그렇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고흐에게서 그림은 이제 현실을 그대로 모사해 그려내는 것이 아니었다. 객관적인 실체보다는 화가에게 보여지는 인상을 중시했던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고흐에 이르러서 회화 공간은 그것이 형태가 되었든 색채가 되었든 화가의 주관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었다. 색채의 주관적 표현의 일례로 앞에서 본 <비 온 뒤 오베르의 길>이나 <빗속의 밀밭>에서 밭의 토양이 보라색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표현주의가 대두하기 전부터 이미 그 단초가 고흐로부터 마련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근대 회화는 고흐로부터 그 디딤돌 하나를 넘겨 받았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밀짚더미>에서는 그림 중앙에 소나기 뿌린 뒤 채 빠지지 않고 고인 빗물이 짙푸른 그늘마냥 놓여 있다. 그 뒤로 밀짚을 쌓아 놓은 노란 짚더미가 놓여 있고, 구름낀 높은 하늘 위로 까마귀들이 날아 오른다. 까마귀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검은 색 때문에 불길한 죽음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물론 까마귀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그린 추수하는 그림에서도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날고 있지 않고 들판에 앉아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을철 추수기에 낱알을 쪼아먹는 까마귀는 일상적인 들판 풍경중 하나이며, 또 추수 자체도 생명의 거세를 통한 죽음을 담고 있어 얼핏 느껴지는 화면상의 괴리를 극복하고 있다. 수확을 통해 더 많은 생명의 순환과 확산으로 이어짐으로써 보다 새로운 차원으로 죽음과 사멸이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까마귀가 날기 시작한다.

고흐는 생레미에 이어 오베르에서도 빗속의 들판 풍경을 그렸는데, <빗속의 오베르 풍경>에서 다시 까마귀가 등장한다. 비 오는 들판 한 가운데를 검은 까마귀가 날고 있는 모습이다. 들판의 밀밭은 꿈과 정열의 노란색이 아니라 엷게 퇴색한 힘없는 누런 빛이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짙푸른 청색의 마을 풍광이다. 집이며 나무숲이 빗속에서 온통 푸른 그늘에 휩싸여 있다. 지평선 너머의 화면 속으로 살짝 나지막이 들어와 있는 검푸른 하늘이 오히려 더 밝게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그 검푸른 그늘 속으로 검은 까마귀가 빗속을 뚫고 날고 있다. 검푸른 절망의 그늘 속에서도 마치 안식의 둥지를 찾아 가듯이.


고흐가 좋아했던 시인중 하나였던 롱펠로의 시 가운데 <비오는 날>이 있다.


“내 삶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였네.... 비는 내리고 바람 그칠 줄 모르네.....어느 삶에서든 얼마만큼 비도 내리는 법, 어느 정도 어둡고 쓸쓸한 날도 있는 법.”


하지만 시도 위안이 되지 못했나 보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우리가 익히 알듯이 화가의 영혼은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황금빛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까마귀 떼 나는 검푸른 하늘 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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