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부채 연인

09-마네와 모리조

by 유시
모리조, 무도회에서, 1875, 캔버스에 유채, 65x52 cm,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15~16세기경 교역을 통해 중국의 부채가 유럽에 전해진 이후 17세기에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부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8세기에는 유럽에서 부채의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부채는 여성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식품이었다. 부채는 더위를 식히는 실용적 측면 이외에도 얼굴을 가릴 때도 유용하였으며, 장식품으로도 그만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 부채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채를 가슴에 대면, ‘내 사랑을 당신이 얻었다’, 절반쯤 펼쳐서 입술에 대면, ‘키스해도 좋다’, 부채 끝에 손가락을 대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다’, 부채를 빨리 부치면, ‘난 결혼했다’, 천천히 부치면, ‘난 약혼했다’ 하는 식으로 이른바 부채 언어가 있었던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여인 그림을 보면 종종 부채가 등장한다. 실내의 초상화 그림이나 야외 풍경에서 여인들은 많은 경우에 부채를 들고 있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모네>가 대표적이다. 모네는 14개의 부채가 부착된 벽면을 뒷 배경으로 역시 또 하나의 접부채를 펼쳐 든 채 붉은 색의 화려한 기모노 복장을 한 자신의 아내를 그렸다.

모네,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 모네, 1876, 캔버스에 유채, 231.8×142.3cm, 보스턴미술관

마네 역시 여러 그림에서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1860)나 보들레르의 연인을 그린 <잔 뒤발의 초상>(1862) 등이 그 예이다. 그 가운데 특별히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화 그림들을 보면 상당 수의 그림에서 부채를 들고 있는 모리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이 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리조는 초기부터 인상파 그룹에 참여한 대표적인 여류 화가이다. 그녀는 스스로도 부채를 든 여인들의 그림들을 다수 그리기도 하였다.

모리조가 인상파의 주축이었던 에두아르 마네를 알게 된 것은 1868년 여름이었다. 당시 모리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는데, 팡탱 라투르가 그녀를 마네에게 소개하였다. 이때 마네는 36살로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모리조는 27살로 아직 미혼이었다. 마네는 생기발랄하고 지적이며 재능이 있는 젊은 그녀의 매력에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집에서 매주 목요일에 여는 파티에 모리조를 초대하였다. 이후 모리조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마네 그림의 모델이 되어 마네의 화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마네, 발코니, 1868, 캔버스에 유채, 170×124.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마네가 처음 모리조를 그린 그림은 <발코니>이다. 이는 고야의 <발코니의 마야들>에 착안하여 그린 일종의 군상화이다. 생페테르부르 거리에 있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아내 쉬잔의 친구인 바이올린 연주자 파니 클로와 베르트 모리조, 화가 앙투안 기유메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앉아 있는 모리조의 뒤편으로 어두운 집안에 아들 레옹이 흐릿한 형체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모리조는 우산을 끼고 있는 파니 클로와는 달리 흰 드레스 차림으로 접혀 있는 부채를 들고 있다.


마네, 휴식(베르트 모리조의 초상), 1870, 캔버스에 유채, 148×113cm, 프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미술관

또 다른 그림인 <휴식>에서도 모리조는 부채를 손에 들고 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검은색 허리띠를 한 채 사색적이고 꿈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드레스 아래로는 흰 스타킹과 검은 신발을 신은 발이 보인다. 마네는 이 그림에서 보통 때와는 달리 그의 서명을 오른쪽 하단부가 아닌 모리조의 얼굴 뒤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에다 하였다. 이로써 마치 모리조의 방에 마네가 있어 모리조가 그를 보고 있고, 반대로 마네 역시도 모리조를 볼 수 있도록 하려는 듯이.

마네, 부채를 든 모리조, 1872, 캔버스에 유채, 60×4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아예 제목에서부터 <부채를 든 모리조>와 <부채를 쥐고 있는 모리조>를 그리기도 했다. <부채를 든 모리조>(1872)의 경우는 인물의 검은 드레스와 대비된 붉은 색의 배경이 굵은 선으로 칠해져 있고, 인물의 구도가 중심에서 벗어나 있어 자연스럽게 배경색에 주의가 쏠리도록 되어 있다. 비록 부채를 높이 쳐들고 있어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부채살 사이로 보이는 얼굴 윤곽과 망사를 투과해 보이는 팔의 실루엣, 부채를 든 흰 손, 다리를 꼰 자세에서 드러난 발목의 흰 스타킹이 검은 드레스와의 색의 대비 속에서 마네 특유의 에로티시즘이 묻어나오고 있다. 참고로 이처럼 부채를 펼친 채 얼굴 위로 들어 눈을 가리면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마네, 부채를 쥐고 있는 모리조, 1874, 캔버스에 유채, 50×61cm, 개인소장

<휴식>과 <부채를 든 모리조>는 발을 드러내 보이는 인물 구도를 보이고 있는데, 마네는 특별히 이 구도에 매혹되었다. 마네는 말레르메에게, “여성이 발을 들어 올리는 방식을 보면,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추론해 낼 수 있다네. 매혹적인 여성들은 항상 발을 드러내지. 발을 감추고 있는 여성을 뒤쫓을 생각은 하지도 말게”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모리조는 마네의 모델을 서면서 한편으로는 화가로서의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 속에서 마네를 비롯한 드가나 다른 인상주의 화가로부터 인정을 받기를 갈구하였다. 동시에 젊은 여인으로서 사랑을 받으며 가정을 꾸리는 것 또한 갈망하였다. 중간에 제자로 들어온 에바 곤살레스에게로 마네의 관심이 잠시 쏠리는 때에는 경쟁자로서 질투를 느꼈으며, 같이 그림 공부를 했던 언니 에드마가 중도에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결혼하여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면서는 갈등을 느꼈다.


모리조로서는 일가를 이룬 마네에게 화가로서의 존경과 함께 추종자로서 그의 가르침을 자기발전의 기회로 삼으면서, 인간적인 매력도 동시에 가졌던 듯하다. 마네 역시도 젊은 모리조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림의 모델을 삼아 여러 점의 작품을 그리면서 가까이 하였다. 이 두 화가 사이의 이런 특별한 친밀감에 대해 주위의 다른 화가들은 ‘마네가 그때 기혼자 신분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모리조와 결혼하였을 것’이라고들 할 정도였다.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연인 사이였다는 명시적인 확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역으로 단순한 지인 사이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네는 기혼자로서 모리조와의 관계가 더 진전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가, 급기야는 모리조를 자신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시킴으로써 가족 관계로 만들었다. <부채를 쥐고 있는 모리조>(1874)는 마네가 모리조에게 준 결혼기념 선물이었다.
마네는 모두 11점의 모리조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을 통해 마네는 모리조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자신에 대한 모리조의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들 가운데 2점은 모리조에게 주었고, 5점은 마네가 직접 소장하면서 소중하게 아꼈다. 모리조에게 마네가 준 선물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이젤도 있지만, 보다 의미있는 그림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마네, 제비꽃 다발, 1872, 캔버스에 유채, 22×27cm, 개인소장

<제비꽃 다발>이란 정물화이다. 여기에는 제비꽃 다발과 함께 부채가 대각선으로 누워 있고 오른쪽에 접혀 있는 편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베르트 양에게.......마네 드림’이라고 씌어 있다. 일종의 그림 연애편지인 셈이다. 제비꽃과 부채, 편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상징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883년 마네가 죽었을 때, 모리조는 마치 남편이라도 죽은 듯 몹시 슬퍼하였다. 모리조는 다른 동료들과 같이 마네의 사후전시회를 주도적으로 기획하여 1884년 1월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그즈음 그녀는 언니인 에드마에게 그녀와 마네와의 사이에 연애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하였다. “언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는 게 즐겁지는 않아. 전시회에는 가겠지만, 그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까“
나중에 남편인 외젠 마네마저 1892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모리조는 죄의식과 함께 막심한 후회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떨어지고 있어......지난 사흘 동안은 매일 밤 울었어.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지나온 삶을 되돌아 봐야겠지. 그것을 기억하고,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 아니, 그런 것도 다 부질없어. 이미 죄를 저질렀고, 고통을 받으며 속죄도 했잖아. 수천 번도 더 설명했던 그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나쁜 이야기만 남게 되겠지.”

베르트 모리조는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부터 마지막 제8회 전시회까지 출산 때였던 1879년 한번만을 빼고서는 모두 참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모리조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상이 매력적이며, 화려하면서도 미묘한 색채 구성 또한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그녀가 그린 여러 그림들 중에서 유독 부채를 든 여인들의 그림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네가 처음으로 자신을 모델로 그린 <발코니> 그림에서 자신에게 들리게 한 부채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점의 초상화 그림에서도 들었던 부채, 그리고 그에게서 받은 연애편지 그림에서 등장했던 제비꽃 다발과 함께 있던 부채에 이르기까지 부채는 이들 관계의 또 다른 상징이다.


모리조의 그림중 <무도회에서>를 비롯해, <부채를 든 여인>,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점심 식사 후>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부채를 들고 있다. 모리조는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들을 그리면서, 자신을 그렸던 마네를 생각했을 것이다.


모리조, 부채를 든 여인, 1874, 캔버스에 유채, 50.5 x 81 cm, 코펜하겐, 오드럽가르드 콜렉션
모리조,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 1879년경, 캔버스에 유채, 80.6 x 99.7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리조, 점심 식사 후, 1881,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점심식사 후>는 밀짚 모자에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식사후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한 손에는 역시 부채를 쥐고 있다. 이 그림은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와 125억원(1098만불)에 팔렸다. 이는 역대 경매 사상 여류 화가 그림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으로 평가된다.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모리조는 젊었을 때 많은 갈등과 번민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마네는 멘토이자 마음속 연인으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가족으로서 그녀에게 귀감이 되었고 또한 위안이 되었으며, 의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홀로도 우뚝 설 수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