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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Jun 25. 2016

인생역전

48-아르망 기요맹

아르망 기요맹, 책을 읽고 있는 미래의 기요맹 부인, 1882.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온다. 과거에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았다는 직종도 더이상 무풍지대가 아니어서 다들 유행가 가사의 "아, 옛날이여"를 되뇌일 정도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의 형편은 늘 곤궁하였다.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일부 억만금의 그림값 수혜를 보는 화가들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나마 사후에라도 재평가를 받아 미술사에 불멸의 지위를 얻는다면 다행이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인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 : 1841 – 1927)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요즘에도 인생역전을 꿈꾸며 로또의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듯이, 기요맹도 19세기말 프랑스에서 그같은 꿈을 꾸던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투잡까지 해가며 어려운 예술가의 길을 걷던 그는 드디어 한방에 인생반전을 이루었다. 1891년 50살에 혹시나 하던 복권이 당첨되어 거금 10만 프랑의 당첨금을 타게 된 것이다. 미술사에서 복권에 당첨된 화가는 전무후무하다. 이로써 그는 그동안 생계 방편 수단이었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화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풀리자 그는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풍경들을 작품으로 그렸다.


책을 읽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은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될 마거리트이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어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고운 얼굴만은 감출 수가 없어 보인다. 그는 1882년작인 이 그림을 그린 뒤 4년 후인 1886년에 그녀와 결혼하였다. 책을 읽고 있는 아내 그림은 이외에도 다수가 있다. 1889년에 그린 작품에서는 고흐 풍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는 결혼하던 해에 고흐와도 친구가 되었다. 그가 복권에 당첨된 것은 어쩌면 아내를 잘 얻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는 1841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 뮬랭 지역의 학교를 다니면서 그곳의 산악 풍경 인상이 예술에 대한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상주의 그림 수집가인 유진 뮤러와의 평생에 걸친 교우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1857년 다시 파리로 되돌아와 삼촌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야간에 드로잉 수업을 다녔다. 스위스아카데미에 다니기 전까지 국영철도회사 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이 미술학교에서 세잔과 피사로를 만났으며 일생동안 이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하였다. 유난히 가난했던 그는 그림만으로는 생계가 힘들자 1872년 교량 및 보도 건설과에 들어가 일을 하였다. 1874년 제1회 전시회를 비롯하여 총 8번의 인상주의 전시회 중에 6번 작품을 출품하였다.   그는 크로잔 마을 근처의 크뢰즈 지역의 풍경을 그렸던 다양한 화가 그룹을 지칭하는 크로잔 화파의 리더로 불리웠다. 그의 흉상이 마을 교회 근처 광장에 있다.


아르망 기요맹, 기요맹 부인,  1889, 종이에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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