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르누아르
인상주의 화가들은 기차를 타고 파리 교외로 나가기도 했지만, 배를 타고 센 강을 따라 루아브르까지 여행을 하며 강변 풍경들을 그리기도 했다.
1865년 르누아르는 시슬레와 그의 형 앙리와 함께 10일 정도의 여행을 계획하며, 친구 바지유에게 편지를 보내 보트에 자리가 하나 비니 같이 가자고 권유하였다. 그 서신을 보면, ‘총경비는 50프랑 정도이며, 루앙까지 다른 선박에 예인해서 가고 거기서부터는 직접 배를 몰고 갈 것이다, 자기는 마땅한 곳이 있으면 스케치를 할 생각으로 그림 도구를 가져 간다, 매혹적인 여행이 될 것이니 함께 하자’고 종용하고 있다.
실제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같이 여행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동일한 곳을 서로 다른 스타일로 그리기도 하였다. 르누아르는 1868년에서 1870년에 모네와 함께 센 강변을 따라 여행하면서 풍광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멈추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때 이들이 같이 그렸던 소재중 하나가 <라 그르누예르>이다. 이를 보면 르누아르와 모네가 그린 똑같은 풍광이 각자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그리고 서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라 그르누예르”는 개구리 연못이라는 의미로 모래사장과 댄스홀을 갖춘 식당이다. 이 식당은 파리 근교 샤투와 부지발 사이를 흐르는 센 강의 작은 섬 크루아시에 있었는데, 철도를 통해 파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즈음 샤투는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와 함께 방문한 이후 휴양지로서 명성을 떨쳤다. 사람들은 여기로 와서 식사나 산책, 물놀이에 뱃놀이도 즐겼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흐르는 강물 위에서 햇빛이 반짝거리는 효과를 탐구하면서 동일한 시점에서 함께 관찰하고 서로 조언을 나누고 비교하면서 각자 작품을 제작하였다. 모네의 그림은 시야를 멀리까지 내뻗어 햇빛이 일렁거리는 전경의 수면과 함께 저 멀리서부터 들어와 있는 원경의 강물이 전체 그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가져감으로써 그림이 갖는 조망을 확장시키고 있다. 반면 르누아르의 그림은 시야를 더 가까이 당겨옴으로써 정경의 묘사가 보다 구체적이다. 예컨대 중앙에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아예 다리를 쭉 뻗고 낮잠을 즐기는 개도 한 마리 그려져 있고, 왼쪽 아래로는 팔을 뻗어 매어져 있는 배를 붙잡으려는 아이도 묘사되어 있다.
르누아르의 또다른 라 그르누예르 그림은 아예 사람들에게 더 근접하여 물놀이하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물가 둔덕 위에서 성장을 한 이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가에서는 물놀이하는 이들도 보이고, 멀리 강 한가운데로 돛을 단 배도 지나간다. 미완성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칠게 스케치한 것 같은 필치가 인상주의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파란 양산을 쓴 여인의 붉은 허리띠가 단조로운 색감에 변화를 주고 있다.
1873년 여름 르누아르는 아르장퇴유에 있는 모네의 집에서 여러 날 머물며, 그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아르장퇴유의 뱃놀이>도 그 무렵 그려진 것이다. 강에 여러 척의 배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전경에 헤엄치는 물오리와 강기슭에서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여인이 보인다. 1874년 여름에도 르누아르와 모네는 같이 어울려 그림을 그렸다. <라 그르누예르>와 비슷하게 이때에도 이들은 동일한 풍광을 같이 그렸다. <아르장퇴유의 센 강>, <아르장퇴유의 요트 경주>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하늘과 강의 표현에서 빛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하려 하였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르누아르의 <아르장퇴유의 요트 경주>는 모네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
르누아르의 1875년작 <스키프>(소형 보트)는 어느 곳을 그렸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파리 근교 샤투의 센 강변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는 남자들이 배를 몰 것으로 짐작되지만, 여기에서 노를 저으며 배를 타고 있는 이들은 차림새로 보아 분명히 여인들이다. 여자들끼리도 거침없이 뱃놀이를 즐겼나 보다. 보트의 오렌지색과 강물의 코발트 빛 푸른 색이 대비되어 보색 효과를 냄으로써 보트는 더욱 밝게, 강물은 더욱 깊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강 건너편 숲 너머의 둔덕 위로 자그맣게 기차가 연기를 내품으며 지나고 있다.
1877년작 <보트의 여인>에서는 전면에 보트를 탄 젊은 여인이 크게 그려져 있다. 왼편으로는 노를 젓고 있는 1인용 경주용 카약과 그 뒤로 멀리 범선도 보인다. 경주나 시합 장면 또는 이를 위한 연습 장면을 그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배에 깃발도 달려 있다. 그런데 젊은 여인이 양손에 쥐고 있는 끈이 의아하다. 왜 저러고 있을까, 이 끈은 무엇일까. 이 끈은 배의 방향을 제어하는 키를 조정하는 끈이다. 여인은 이 끈을 잡고 키를 조정함으로써 배의 방향을 잡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여인의 앞 쪽에서는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남자가 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여인은 남자들의 인생의 방향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르누아르 인생의 키를 좌우한 여인은 누구인가.
파리 근교 샤투는 뱃놀이로 유명한 곳이다. <샤투의 노젓는 사람>은 멀리 요트도 보이고 1인용 경주용 배인 스컬도 보이는 가운데, 전경에 2인용 보트에 뱃놀이 일행이 막 타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남자 모델은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과 친구인 카유보트, 여자 모델은 알린 샤리고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나중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는 알린 샤리고가 모델로 나오는 첫 번째 그림으로 보여진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강물의 묘사가 선명하다. 오렌지 색과 푸른 색, 붉은 색과 녹색의 보색 효과도 돋보인다.
<뱃놀이 연인>의 모델은 알린 샤리고와 르누아르로 알려져 있다. 르누아르가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될 알린 샤리고를 만난 것은 르누아르가 거주하던 생 조르주 가 아파트 맞은 편 식당 “쉐 까미유”에서였다. 알린은 르누아르의 화실에서 모델로 포즈를 취해 주고는 했는데, 일요일이면 가끔씩 함께 야외로 나가기도 하였다. 이 그림도 센 강에서 뱃놀이하는 것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물들만을 가까이에서 부각시켜 얼핏 보면 강의 풍경이나 배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제목에 뱃놀이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남녀가 쓰고 있는 모자가 뱃놀이할 때 쓰는 밀짚모자이고, 인물들 뒤로 푸른 색과 파란 색의 풀잎과 물빛이 배경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 위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손에는 사랑의 증표인 반지가 끼워져 있고, 사랑의 마음을 담은 제비꽃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