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인상주의와 점심을

11- 마네, 모네, 르누아르

by 유시
르누아르, 점심 식사의 끝마무리, 1879, 캔버스에 유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마네, 풀밭 위의 점심, 1862–1863, 캔버스에 유채, 208×265.5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점심을 꼽자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 그림은 1863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되었으나 낙선하였다. 그 해 살롱전에 제출된 그림은 화가 3천여 명의 5천여 점이었는데, 이중 988명 화가의 2,217점만이 선정되었다. 결과에 대한 화가들의 항의와 비평가들 사이의 논쟁, 심사위원단의 사직 으름장 등 일련의 소란 끝에 예술계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개입으로 낙선 그림들을 별도로 전시하는 낙선전이 개최되었다. 이른바 “황제의 전시회”가 살롱전 바로 옆 공간인 산업전시장에서 열린 것이다. 언론의 주목과 반향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이 커져서 낙선전의 총 관람객 수는 살롱전을 능가하였다. 낙선전에서 마네의 이 그림은 “목욕“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는데, 가장 심한 혹평을 받았다. 기존의 도덕과 논리,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마네는 다른 유럽 회화의 유산을 나름 변용하였다. 구성 면에서 라파엘로의 드로잉과 관련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의 일부분으로부터 구도를 빌려오고, 주제 면에서는 티치아노의 <전원 교향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비평가들과 대중들은 바로 이 점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의상으로 성장을 한 남자들 사이에 누드의 여성이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신화적으로나 우의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었다. 일상적인 풍경을 외설적으로 받아들인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마네는 대중들의 이런 반응을 비꼬듯이 이 그림의 별칭을 농삼아 “스와핑 파티”(la partie carrée)라고 불렀다.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파리스의 심판,1510-1520, 판화, 29.1x43.7cm
모네, 풀밭 위의 점심(소풍)을 위한 스케치, 1865, 캔버스에 유채, 130×181cm,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클로드 모네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에 착안하여 살롱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1865년 <풀밭 위의 점심(소풍)>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은 마네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것이자 그에게 도전한다는 차원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높이 4m에 폭 6m의 대작으로 진행되었다. 큰 화폭에 인물 12명을 실물 크기로 그려 넣을 생각이었다. 모델은 2명이었는데, 친구인 바지유와 당시 연인이었던 카미유가 각 인물의 포즈를 취하여 그렸다. 그래서 그림 속 인물들을 보면 남녀의 얼굴이 각각 모두 거의 동일하다. 이 작업은 1866년에 중단되었다가 마침내는 폐기되었다. 모네는 그 무렵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임대료에 대한 보증으로 이 그림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돈이 준비되어 그림을 되찾으러 갔을 때에는 보관을 잘못하여 곰팡이가 핀 상태여서 이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모네는 1884년 이 그림을 회수하여 3개의 판넬로 쪼개어 재생시켰는데, 이중 하나는 유실되고, 현재 나머지 판넬 2점이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남겨져 있다.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에 있는 것은 1865년 8월 샤이에서 원작을 위해 보다 작은 크기로 그린 스케치 그림이다.

모네, 풀밭위의 점심(중앙 판넬), 1865, 캔버스에 유채, 248×217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을 그렸던 1863년 당시 그는 31살이었다. 그 무렵 그는 이탈리아 대로에 있는 토르티니 레스토랑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바드 카페에서 그의 추종자들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모네와 만나기 전이다. 이들은 3년쯤 더 지난 후 조우하게 된다.

1866년 살롱전에 클로드 모네의 작품 2점이 전시되었다. 퐁텐블로 인근 마을의 풍경을 그린 <샤이의 길>과 그의 아내 카미유를 그린 <녹색 드레스를 입은 카미유>가 그것이다. 미술 감상에 입문하는 대부분의 초보자들이 경험하듯이, 그 당시 파리에서도 마네와 모네 이름이 헷갈렸던 모양이다. 한 풍자 만화가가 이 혼동에 착안하여 ‘모네인가, 마네인가?’란 제목의 캐리커쳐를 그렸다. 그러면서 ”작가는 모네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네 덕분에 모네를 얻었다. 브라보, 모네 씨! 감사합니다, 마네 씨!“라고 설명하였다. 마네는 언짢기도 하거니와 자신과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이 신원미상의 신인이 궁금하기도 하여, 모네에게 초청장을 보내 바드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모네는 마네에게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를 소개시켰고, 마네는 그들에게 드가를 소개시켰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드디어 하나의 집단으로 결합하는 순간이다.

1869년 살롱전에서 마네는 <발코니>와 함께 <점심>을 출품하여 전시하였다. 예의 <풀밭 위의 점심>와 대비해 확실하게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하여 <작업실에서의 점심>으로도 불리는 작품이다. 전면의 앳된 남자는 아들인 레옹이고, 그 뒤의 남자는 친구인 오귀스트 루슬랭이다. 특이하게도 앞쪽 의자에 칼 한루와 프로이센 군의 투구, 여성용 검은 모자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은 실제로 점심 식사의 분위기보다는, 마치 네덜란드 거장의 작품처럼 복합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베르메르의 작품속에서처럼 벽에 지도까지 걸려 있을 정도이다.

마네, 점심, 1868, 캔버스에 유채, 118×154cm,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모네 역시도 마네를 따라 그렸던 <풀밭 위의 점심(소풍)> 이후 “점심”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더 그렸다. <점심>(1868)과 <점심: 장식 판넬>(1874년경)이 그것이다. 모네의 그림도 마네와 마찬가지로 점심의 배경이 가정이 되고 있다. 가족의 일상생활 속의 점심 풍경을 다룸으로써 실내나 집 정원의 정경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림의 등장 인물도 아내나 아들과 같은 가족들이 모델이 되었다.

모네, 점심, 1868, 캔버스에 유채, 232×151cm, 프랑크푸르트, 스테델 미술관

모네의 <점심>(1868)은 풍족한 식탁에서 아직 어린 아들 장과 함께 있는 아내 카미유를 그리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내밀한 실내 정경을 2미터가 넘을 정도의 큰 크기로 제작하는 것은 가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모네는 이 그림을 1870년 살롱전에 출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몇 년 뒤인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전시하였다.

모네, 점심: 장식 판넬, 1874년경, 160×201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의 <점심: 장식 판넬>은 1876년 제2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전시된 그림이다. 이 그림 주제의 매혹적인 점은 가족의 일상이나 그것의 남아있는 흔적에 대한 단순한 환기 속에서 나타나는 즉흥성의 인상에 있다.

식사가 끝나고 식탁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나무 가지에 모자가 걸려 있고, 벤치 위에는 가방과 양산이 놓여 있는데, 마치 잊어먹은 것처럼 보인다. 왼쪽 녹색의 얼룩 그늘 속에서는 모네의 아들 장이 조금 더 큰 모습으로 장난감 나무토막을 가지고 조용히 놀고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은 모네 가족이 아르장퇴유에서 살았던 첫 번째 집의 정원이다.

르누아르, 강변에서의 점심, 1879, 캔버스에 유채, 55×66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르누아르에 이르러서 이제 점심 장소도 야외로 확장된다. 그가 그린 점심 그림으로는 센 강가에서 그린 강변을 배경으로 한 작품 두 점이 있다. <강변에서의 점심>은 당시 인기 관광지였던 센 강가의 샤투(Chatou)에서 그린 것으로 노젓는 사람들의 점심 순간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공간은 담쟁이 넝굴이 올라간 격자 벽에 의해 둘로 나누어진다. 전면은 탁자를 중심으로 두 남자와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여자가 중심이 되고, 뒤 배경으로는 강에서 노를 젓고 있는 배가 여럿 지나가고 있다. 오른쪽 남자는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 속에서 등을 젖힌 자세로 느긋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다.

르누아르, 뱃놀이 점심, 1880~1881, 캔버스에 유채, 130×175cm, 워싱턴DC, 필립스 컬렉션

<강변에서의 점심>을 발전시킨 <뱃놀이 점심> 역시 샤토에서 그린 것으로 배경은 그곳의 레스토랑 푸르네즈이다. 이 그림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에밀 졸라의 부추김에서 나왔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작은 그림들만 그리지 말고 좀더 규모가 크고 복잡한 야심찬 그림들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맨 왼쪽의 밀짚 모자를 쓴 남자는 푸르네즈 레스토랑의 주인 아들인 알퐁스 푸르네즈이며, 그 아래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자는 나중에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는 당시 19세의 모델 알린 샤리고이다. 참고로 이때 르누아르의 나이는 39세였다. 나머지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르누아르의 친구들이다. 중앙에 등을 보이고 있는 남자는 바르비에 남작, 뒤에 실크해트를 쓴 남자는 “가제트데보자르”지의 발행인 샤를 에프뤼시이다. 전경 오른쪽으로는 앙젤, 신문기자 마졸로, 뱃놀이를 좋아했던 카유보트이다. 그 뒤로 중절모를 쓴 레스트랭게즈, 신문기자 로트, 르누아르 그림의 또다른 모델인 배우 잔 사마리가 보인다. 그림속 인물들은 일부러 포즈를 취하지 않고 다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놓은 듯 비춰진다.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 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줄 만큼 생생한 그림이다.

이런 생생함 때문에서였을까, 수잔 브릴랜드는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에서 이 그림을 실물로 처음 보고 영감을 얻어 르누아르와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을 소재로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이라는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르누아르는 몽마르트의 작은 레스토랑의 단골이었다. <점심식사의 끝마무리>(1879)는 점심을 마친 일행이 후식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햇살 밝은 날, 르누아르의 동생과 배우 엘렌 앙드레가 정원에서 점심을 같이 하고 식후에 마시는 술 한 잔을 하면서, 르누아르의 모델중 한 사람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식후 끽연을 위해 담뱃불을 붙이는 성냥과 불붙은 담배 불빛, 희미하게 타오르는 담배연기, 연기가 매운지 실눈을 뜨고 담뱃불을 빠는 끽연가의 표정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일상의 한 순간이 정지된 채 영원으로 피어 올라 가고 있다.


식사 장소로 고즈넉한 숲 속 풀밭이나 햇빛 따뜻한 정원도 좋고,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강변도 좋을 것이다. 또 음식 잘하는 레스토랑에서 별식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정말로 근사한 식사는 어디서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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