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 루이 도드
꽃샘 추위는 항상 느닷없이 오지만 그렇다고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봄이 오는가 싶어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을 풀고 조금 해이해지는가 싶으면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어김없이 닥친다. 그런데 추위와 함께 눈이 온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춘삼월에 오는 눈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가지고 내린다. 이번 겨울에 내리는 마지막 눈인 것이다. 그것도 함박눈이라면 서운함 속에서도 푸근함이 느껴진다.
루이 도드(Lois Dodd: 1927~)의 <3월의 눈>이 그러하다. 지붕 위로 밤송이같은 눈송이가 말 그대로 펄펄 내리고 있다. 막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직 쌓이지도 않았지만 엷은 회색톤의 화면 색조는 단번에 이 그림이 설경을 그린 것임을 알아차리게 만든다. 그림의 담백한 멋이 마치 동양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지붕 위로 나뭇가지들이 방사형의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치올라가고 있다. 어느 비평가가 이 그림을 설명하면서 앙상한 나뭇가지와 흩날리는 눈송이의 이중주를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인 파드되(pas de deux)에 비유하고 있는데, 나름 핵심을 포착하고 있는 묘사라 생각된다.
루이 도드는 미국 뉴저지 몽클레어에서 태어나 뉴욕의 쿠퍼유니온에서 수학하였으며, 20대에 화가들의 협동조합인 태니저 갤러리(Tanager Gallery)를 만들어 그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뉴욕 아방가르드 회원중 하나였으며, 브루클린 대학에서 2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미국 학술원, 국립디자인아카데미, 예술문학연구소의 회원으로 있다. 메인 주 쿠싱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인근 해안 풍경들을 작품화하였으며, 이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미국의 메인 상"(Maine in America Award)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현재 아흔이 다 된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했던 그림의 대상들은 풍경, 창, 석양, 월출, 꽃 등으로 여러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변주되고 있다. 이를테면 2016년 봄 현재 뉴욕 알렉산드르 갤러리에서 "루이 도드: 낮과 밤" 이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는 최근작들에서도 '창'을 소재로 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중 <지붕, 나무, 창의 성에 + 눈>(2015)은 마치 <3월의 눈> 작품의 배경을 뒤로 멀리 밀어 빼서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루이 도드, <지붕, 나무, 창 성에 +눈>, 2015, 마소나이트 판넬에 유채, 50.8×35.5cm, 뉴욕 알렉산드르 갤러리
이 눈이 그치고 날이 온전히 풀리면 저 나뭇가지에도 물이 차오르고 새잎이나 봄꽃들이 소란스럽게 피어날 것이다. 3월의 눈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이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눈꽃이 곧 봄꽃으로 바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붕위에 나 있는 다락방 창문으로 눈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은 응당 봄소식일 것이다. 봄은 지금 어디메쯤 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