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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Nov 24. 2016

빛이 들어와 앉다

78- 마이크 할

마이크 할, 통과된 빛, 연도미상, 아크릴,  35.6 x 30.5 cm

엊그제 계단을 밟으며 지하철 출입구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계단마다 노란줄이 한 줄씩 그려져 있었다. 마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형광색 안전띠가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햇살이 지하철 출입구 계단을 타고 하나하나씩 내려서고 있었다. 해의 기울기와 계단의 경사 각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 생긴 하루에 딱 한번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창밖으로 벽을 타고 붙어 있는 담쟁이넝쿨이 한가득이다. 창틀에 놓인 화분의 잎사귀들도 한껏 푸르다. 초록의 향연이다. 이를 옆에서 북돋는 것은 햇볕이다. 담쟁이넝쿨 사이사이로 점점이 그늘을 박으며 잎새마다 내려 앉아 있다. 실내에서 내다보는 시선이지만 눈이 부시다. 그 햇살이 슬며시 창틀을 타고 넘어와 집안 탁자 끝에도 앉았다. 탁자 위에는 받침대와 컵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 탁자의 주인은 바로 끄트머리에 가로로 앉은 환한 빛 한 줄이다.  


마이크 할(Mike Hall)은 영국 출신으로 맨체스터미술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런던 왕립미술대학 대학원을 마쳤다. 그의 최근 풍경화나 실내화 작품들은 저녁과 이른 아침의 빛이 주는 여명과 반쯤 내리는 어둠에서 새로운 분위기와 정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특히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을 탐색하고 있다. 한낮에 쏟아지는 햇살을 가지고도 작품화를 하고 있는데, <통과된 빛>이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가 두드러진다. 햇살의 방향이 오른쪽에서 오고 있어서 창문 밖 왼쪽 담쟁이 넝쿨은 보다 선명하게 그려져 있고 오른쪽은 희뿌였게 그려져 있다. 빛의 산란 현상까지도 잡아내 화폭에 담은 관찰력과 정밀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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