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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Dec 21. 2016

쪽진 머리

79- 마이클 테일러

마이클 테일러, 쪽진 머리, 1976, 캔버스에 유채, 61×61 cm

여인이 의자에서 뒤돌아 앉은 채 뒷머리를 보이고 있다. 머리는 단정하게 쪽지워져 있다. 하지만 구도상 왼쪽으로 인물이 쏠려 있어 다소 불균형적으로 보인다. 오른쪽 뒤로 창문이 있어 겨우 기울어진 균형을 복원시켜 놓고 있지만 왠지 불안정해 보인다. 여인 뒤로 창 앞에 진한 갈색 책상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여인과 창을 이어주고 있다. 창턱 아래로 간이 책장이 붙어 있어 이런저런 책들이 꽂혀 있다. 거기에서 책을 골라 햇빛 밝은 책상에서 책을 읽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다.


뒤돌아 창을 보기로 하자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데 굳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까닭은 머리를 단정하게 쪽진 것을 보여 주고자 함이다. 그러니 그림의 제목이 <쪽진 머리>가 될 수밖에. 단정한 머리만큼이나 방안 풍경도 단촐하다. 벽에는 아무런 장식물이 없고 책상 위에도 어떤 물건도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장식품은 창 앞에 세워 놓은 장식 접시뿐이다. 화려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단아한 수수함의 정경이다.


마이클 테일러(Michael Taylor: 1952~  )는 영국 화가로 그림의 분위기처럼 한번에 한 그림씩 조용하고도 신중하게 작업을 한다. 골드스미스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그리니치의 팝에서 매일 저녁 일하면서 생계를 꾸리며 그림을 그렸다. 다행히 왕립아카데미 여름전시회에 출품하고 작품이 팔리면서부터는 화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그림들은 시간의 경과와 쇠락 속에서 그 자신이 느끼는 지극히 작은 변화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것은 때로 눈으로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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