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프란시스 피카비아
창을 통해 보는 시선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안과 밖에서 상호교차하는 것이다. 창 안에서 바깥을 보기도 하지만 거꾸로 창 밖에서 안을 볼 수도 있다. 창 안에서 바깥을 보는 시선은 특별히 내밀할 필요가 없다. 개방된 곳은 공개된 모습이어서 가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 안의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창 안을 보는 그림 속 인물의 시선이나 이 그림을 마주 보는 관객의 시선이 내밀해 질 수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창 안의 공간이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개인 공간에서는 혼자 있거나 아주 가까운 사람과만 있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주 사적인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 화면에서처럼 옷을 벗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창 안에서 옷을 벗는 여인을 발견하는 순간, 그 옆에 머리에 빨간 스카프를 한 여인이 똑바로 관객을 쳐다 보고 있음을 깨닫고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해진다. 창문을 들여다 보는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관음적일 터인데, 실내의 상황이 관객의 시선을 실제로 관음적인 시선으로 만들어 버리는 동시에 다른 등장인물의 시선이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1879-1953)는 프랑스 출신으로 그의 회화 양식은 인상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신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파, 다다이즘, 추상주의 등 다양한 변화 과정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그가 60대 초반에 그린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회화로 넘어가기 전에 사실주의 화풍에 집중하던 무렵 그린 것이다. 피카비아의 말이 재미있다. "우리의 머리가 둥글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양식이 그렇게 다양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