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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Dec 14. 2016

기도

56- 칼 준트 한센

칼 준트 한센,  노르웨이 세테스달의 기도하는 소녀, 1883, 캔버스에 유채, 36 x 30 cm

요즈음에야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옛날에는 어지간한 버스나 택시 운전석 앞에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귀가 적힌 기도하는 소녀 그림이 있었다. 교통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운전 기사 직업인지라 본인 스스로 아니면 가족들이 안전운전을 기원하면서 내달아 놓은 것이다. 지금이라고 교통사고 위험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그림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점차 생활이 세련되어 갔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당시 기도하는 소녀 그림은 일종의 이발소 그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알고보면 나름 정식으로 화가가 그린 종교화이다.  그 그림은 영국 화가인 조슈아 레이놀즈가 1776년에 그린 ‘어린 사무엘’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특이한 것은 흔히 알고 있듯 주인공이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라는 점이다. 구약성서 ‘사무엘서’에 나오는 선지자의 어렸을 때 모습이다.


노르웨이의 화가 칼 준트 한센(Carl Sundt-Hansen: 1841-1907)의 그림은 실제로 소녀가 기도하는 그림이다. 기도를 위해 깍지낀 소녀의 두 손이 책 위에 놓여져 있다. 아마도 성경이지 싶다. 앳된 소녀는 성경 말씀을 읽다 문득 간구하고 싶은 것이 있어 두 눈을 감고 기도 중이다. 그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걸까. 그 나이에.


인생을 살면서 신 앞에서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부, 원하는 학교 입학이나 취업, 갈망하는 사랑, 건강의 회복, 위험한 상황에서의 안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복신앙이 종교의 다는 아니다.


세밑이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또 서로에게 복을 주고 받으며 기원할 것이다. 올해보다는 더 많은 복을 받기를.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간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복권에 당첨되기를 간구하려면 최소한 복권 한 장이라도 사두어야 한다. 하느님이 가장 짜증내는 일이 그것이라 하지 않는가. 복권에 당첨시켜 주려고 딱 준비하고 있는데 도대체 복권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농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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