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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Nov 18. 2016

도서수집가

53- 아르침볼도

아르침볼도, 도서수집가, 1566년경, 캔버스에 유채,  97 × 71 cm,  스코클로스터 캐슬


꼭두각시의 계절이다. 머리에 든 게 없으면 귀가 얇아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 십상이다. 머리에 든 게 많아도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마찬가지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는 온몸이 짚으로만 되어 있어 머리에 지혜를 얻고자 길을 떠났다. 그렇다면 온몸이 책으로 이루어진 그림 속 인물은 온갖 지식을 갖춘 지혜의 화신일까?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는 과일이나 채소, 꽃 등의 집합물로 초상화를 그린 일종의 콜라주 작품으로 유명하다. 혹자는 그의 그림을 일컬어 16세기 추상예술의 승리라고도 칭하였다. 그림에 등장하는 집적 대상물은 인물을 묘사하거나 생애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도구로서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그 대상물로 책이 선택되었다. 그림 속의 인물은 합스부르그 왕가의 신성로마제국을 위해 일했던 황실 소장 예술품 큐레이터이자 인문학자, 역사학자였던 볼프강 라지우스(Wolfgang Lazius)이다. 학자에게 책은 그 자신이기도 하다. 그림에서처럼 그가 읽은 책, 쓴 책 들이 바로 그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르침볼도는 1562년 황제 막시밀리언 2세의 공식 초상화가가 되었다. 이 그림은 막시밀리언 2세의 수행단으로서 그가 그린 일련의 연작들 가운데 하나이다. 책과 책갈피, 제본장식 등으로 이루어진 학자의 초상화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학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비웃음이 담긴 풍자의 의미도 담있다. 책을 읽기보다는 수집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허세스런 도서수집가에 대한 풍자인 것이다. 잠시 뜨끔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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