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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Nov 22. 2016

120번씩 읽기

54-역사속 책읽기(2)/ 강희제

작가미상, 서재의 강희제 초상, 연도미상, 비단에 잉크와 채색, 138 x 106.5 cm, 북경 황궁박물관

강희제는 중국 청나라의 4대 황제로 천고일제(千古一帝: 천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황제)라 불리울 만큼 명군으로 칭송받고 있다.  청나라의 태평성대인 강건성세(康乾盛世)를 일으켜 아들인 옹정제(雍正帝), 손자인 건륭제(乾隆帝)까지 태평성대가 지속되는 기초를 닦았다. 선황 순치제가 갑자기 붕어하자, 8세의 나이에 황위에 올라 61년간 재위하였다. 제왕학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황위에 올랐으나 영민하여 스스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보정대신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경영의 경륜을 익혀 14세 때부터 직접 친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평생 배움에 뜻을 두어 학식 역시 뛰어났다. 그의 책읽는 초상화는 장년기의 모습인 이 그림 이외에도 노년기의 독서 초상화가 더 있다. 그의 독서 사랑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였다 한다. 


강희제는 총 64명의 후비와 잉첩을 두어 청나라 역대 황제 중 가장 많은 후궁을 두었다. 당연히 자식도 많아 아들 35명과 딸 20명을 두어 역대 황제 중 가장 많은 자식들을 둔 황제이기도 하다. 69세까지 장수하여 손주만도 97명에 이르렀다. 후손들에 대한 교육도 유별났는데, 현장교육을 중시하여 사냥이나 순행 때 자식들을 데리고 갔으며, 심지어 전쟁에도 같이 출전하여 훈육하였다. 황궁 화원중 하나인 장춘원에 황실 공부방이따로 있어 왕자나 왕손들을 그 곳에서 공부시켰다.  


공부방은 학업에 게으름을 부리거나 다른 데 한눈 팔 수 없도록 일체의 놀이나 여가, 휴식을 행할 수 없게 하였다. 이들 왕자들은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전날 배웠던 것을 복습하고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는 100번씩 써가며 서예를 익혔다. 오후에는 말타기와 활쏘기 등을 익혔으며 다시 공부방에서 학업에 전념하여야 하였다. 새벽 3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 스케줄은 날마다 쉼없이 강행되었다. 


강희제는 공부방에 직접 들러 무작위로 책의 특정 구절을 암송케 하여 이들의 학업 성과를 점검하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면 120번을 소리내어 읽고 그리고나서 다시 120번씩 암송하였다며 자식들에게도 120번씩 읽어 암송하라고 가르쳤다. 선생들에게도 아이들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칭찬하지 말고 늘 비판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강희제의 이같은 엄격한 훈육은 정치지도력, 학문, 예술적 소양, 삶의 처신 등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후계구도에서 한족의 장자승계 원칙과 만주족의 능력자 승계 원칙이 대립갈등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식들 사이에서 편애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재위 말기와 사후에 황자들 사이의 암투와 골육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그렇게 엄격하게 훈육에 신경을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식농사에 실패한 셈이다.



책을 읽는 노년의 강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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