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네빈슨
고층건물의 창에서 내려다 본 항구도시 블로뉴의 정경을 그리고 있다. 블로뉴는 도버해협에 면해 있는 프랑스 북부의 항구이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 보는 창문 틀이 살짝 엿보인다. 거리에는 비가 오는지 우산을 쓴 행인들이 보인다. 마차나 차량도 보이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잡힌다. 바다에는 큰 여객선이 막 입항한 모습이다. 도선을 하는지 아니면 연락을 취하는지 작은 배들이 가까이에서 오가기도 하고 있다. 배의 증기 너머로 항만 건너편 언덕에도 집들이 빼곡하다. 복잡한 항구도시의 정경을 한 장의 그림에 다 담아내고 있다.
그림이 그려진 1920년대는 화가 네빈슨에게 생산적인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런던이나 뉴욕을 비롯해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등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며 도시풍경화를 그렸다. <블로뉴의 창>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근대도시의 속도와 소음에 매혹을 느꼈다. 블로뉴 항구도시를 묘사하면서도 여객선의 증기, 길거리를 바삐 지나가는 행인이나 마차, 차량 등 역동적이면서도 복잡한 도시 풍광 들을 잘 포착하였다. 큐비즘의 영향도 엿보이는데, 왼쪽 건물쪽으로 보이는 호텔이나 바의 글씨 묘사는 피카소나 브라크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크리스토퍼 네빈슨(Christopher Richard Wynne Nevinson :1889–1946)은 런던 태생의 영국 화가이다. 구상과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세인트존스우드미술학교와 슬레이드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파리로 건너가 줄리앙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도 하였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전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초기에는 마래주의와 입체파 성향이었으나 나중에는 리얼리즘으로 화풍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