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구투소
건물들 사이 그리 넓지도 않은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해 있다. 전경에는 연단이 있어 검정색 옷차림의 뒷모습 남자 연사가 오른손을 뻗어 열변중이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차 위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가서 연설을 경청한다. 건물의 1층은 상가이며 2층 이상은 주택으로 창밖 발코니에도 사람들이 나와서 호응하며 같이 참여하고 있다. 모여있는 군중 중에는 전혀 예기치 않은 인물들도 눈에 띈다. 왼쪽 아래에 마릴린 먼로가 있다. 또 오른쪽 발코니에는 파블로 피카소의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캐리커쳐의 배열은 일종의 팝아트적 활용이다.
발코니의 창들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건물들은 칠이 벗겨지고 일부는 부서져 벽돌이 형체 그대로 다 보여질 정도로 낡고 남루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이상은 집회 열기만큼이나 한껏 들떠 있다. 창을 덮고 있는 가리개들이 길게 늘여트려져 있어 마치 집회를 위한 깃발이나 플랭카드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꿈은 항상 현실을 뛰어넘는 힘이 된다.
레나토 구투소(Renato Guttuso)는 시칠리아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였다. 전후 1970년대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의원으로 두 차례나 선출되었다. 그는 리얼리스트 화풍으로 인하여 당이 가장 승인하고 내세우는 화가로서 활약하였다. 그림은 1975년에 그려진 것으로 1970년대 격랑의 이탈리아 정치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