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빅토르 팝코프
어두운 실내를 배경으로 다섯 명의 나이든 여인들이 앉거나 서 있다. 그들은 머리에 수건을 쓴 채 모두 어두운 계열의 붉은 색조 옷을 입고 있다. 얼굴 표정들 또한 한결같이 어둡다. 한 여인이 창가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창밖을 보고 있지만 명암 효과로 인해 옷색깔만 조금 밝게 표현되었을 뿐 얼굴빛은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다. 무슨 일인가.
이 그림을 그린 러시아 화가 빅토르 팝코프는 러시아 서부의 아르한겔스크 지역을 자주 방문하고는 했다. 그 지역에서 특히 메젠강 유역의 마을에서 시간을 자주 보내며 그의 경력에서 보다 자기성찰적인 작품들을 그렸다. 이 마을 주민들의 힘든 생활상은 그림 소재중 하나였다. 팝코프는 거기에서 지낼 때 친구들과 함께 나이든 여인네들을 방문했을 때를 종종 회상하곤 했다.
그 여인들은 오랜 시간 그곳에 앉아 집에서 제조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며 지난 과거를 회상하였다. 그들은 화가 따위는 까마득히 잊은 채 점차 시간을 거슬러 그들의 삶이 시작되었던 때까지 완벽하게 되돌아갔다. 팝코프는 벽 가까이 마루바닥에 누워 그들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 선잠이 들었나 아니면 잠깐 집중력이 사라졌나 그랬다가 다시 감각이 되돌아왔을 때, 갑자기 그는 선명한 하나의 장면을 보게 된다. 35살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가 생각나면서, 어머니의 불행이 떠올랐고, 자신의 눈앞에 벌어졌던 그 총체적인 비극적 상황이 되살아났다. 그는 생각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지? 도대체 왜 그들은 혼자인 거지? 그들의 남편과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거지? 그들이 누려야 할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거지? 운명은 왜 이들에게 야박하게 구는 거지?
그리고 <기억, 과부들>이 제작되었다. 그림 속 여인들은 그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잃은 나이든 과부들이었다. 그네들 가슴 속 평생의 절망과 회한이 핏빛으로 배어나와 붉게 옷을 물들였다. 빅토르 팝코프는 러시아에서 미술계의 도스토예프스키로도 불리운다. 근대 격동의 러시아 사회상의 한 단면을 이 하나의 그림에 담아냈다. 이 그림을 그렸던 1966년은 공교롭게도 화가가 미수에 그친 자살을 시도했던 해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절망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