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토마스 드 바니 포레스탈
한겨울을 지나고 있다. 눈도 와서 건물 뒤 공터의 야트막한 둔덕이 새하얗다. 건물 위나 창틀에도 하얀 눈이 쌓여 있고 서서히 녹다 얼다 하면서 길다란 고드름도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있다. 허름한 빨간 벽돌 건물이 화폭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건물은 많이 낡은 듯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 따라 때깔이 얼룩져 있다.
건물을 그리더라도 대개는 앞면의 파사드를 대상으로 하는데, 유독 허술한 뒷편을 그린 까닭은 무엇인가. 흔히 접하는 대상의 겉모습과는 다른 이면의 또다른 본질을 들여다 보고 보여주겠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화가는 성공하였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낡고 아무런 장식도 없이 기능적으로만 마감된 건물 뒷편의 외벽이 적나라하다. 나름 굳건하게 보이기도 한다. 창이 두 군데 나있어 그나마 답답할 수도 있는 벽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 보면 창과 창 사이 공간에 원래 있었던 창을 메운 흔적이 보인다. 기존에 있던 창턱도 그대로 남아 있고 창문으로 냈던 난로 연통 자리도 그대로 살린 듯 새햐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는 것들과는 달리 마음의 뒷켠은 아무런 장식도 필요없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한 두 군데 창이 나있어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구원의 빛이 들치기를 소망할 수도 있다. 그러다 상처라도 입을라치면 그 통로마저 메꾸고 다시 마음의 벽을 쌓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 온기를 잃지 않는다면 이 한겨울도 견디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