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보르기우
어두운 실내에 한 남자가 식탁에 앉아 있다. 앞에는 술잔이 놓여 있다. 식전 반주 중이다. 열린 문과 거기에 달린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 음영으로 남자의 모습은 어둠 속에 싸여 있다. 그에 따라 실내의 어둠과 함께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손에는 술잔을 다른 한 손은 턱을 괴고 있는데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자못 심각한 번민 중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신종 약칭 조어로 혼자 먹는 밥을 혼밥, 혼자 마시는 술을 혼술이라 한다. 가족이 해체되면서 나타나는 1인 가구의 증가로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제목이 "혼술남녀"인 드라마까지 나왔다. 하지만 알콜중독에 이르는 가장 위험한 길이 혼자 마시기 시작하는 술이다. 멋있어 보인다고 또는 그게 편하고 익숙하다고 습관으로 가져갈 일은 아니다.
마리우스 보르기우(Marius Borgeaud: 1861-1924)는 로잔느 태생의 스위스 화가이다. 그는 몇몇 풍경화나 거리정경, 초상화 들을 그리기도 하였지만 주로 실내 정경의 시적 풍취에 매력을 느꼈다. 실내 정경 그림은 자신의 방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였지만 점차 자신이 다녀간 시대와 장소를 충실하게 리포트하는 증표가 되었다. 그중에는 특별히 카페의 실내 정경 그림이 많다. 이 그림도 그런 유형의 그림이다. 화면처럼 창으로 들치는 빛을 등지거나 외면하면 그림자지는 것은 당연하다. 혼술을 하더라도 밝게 마시자. 그의 다른 그림들 역시 밝은 색채의 그림들도 많다.
보르기우는 원래 은행원 출신이다. 학교에서도 미술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로잔느산업학교를 마쳤으며, 마르세이유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아버지 사망 이후 근 10여년 가까이 호화로운 파리 생활로 유산을 낭비하다가 급기야는 무절제한 생활로 건강을 해쳐 잠시 보덴호에서 휴양하기도 했다. 이후 파리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접어 들었다. 40대 이후에 들어선 화업이라 주위에 자신보다 훨씬 젊은 화가들과 많이 어울렸다. 본인 스스로 인상주의라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후기인상주의 화풍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