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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Jan 05. 2017

탈색되고 남는 것

63-앤 레드패스

앤 레드패스, 아일린, 1949년경, 캔버스에 유채, 81.8 x 56 cm, 페렌스아트갤러리

인물을 제외하고서는 배경을 비롯해 실내 가구며 용품들이 모두 회색 일변도의 무채색으로 죽어 있다. 유독 쇼파에 앉아 있는 여인의 옷만이 노란색으로 빛을 발한다. 거기에 보고 있는 책의 커버만이 정가운데에서 붉은 색으로 눈에 띈다. 심지어 여인의 얼굴색이나 피부색조차 회색이다. 그럼에도 그림의 정조가 암울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고 있지 않으니 제한적으로 색상을 사용하는 기교가 뛰어나다.


여인은 노란 원피스의 색깔만큼이나 빛나는 인생의 화사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그림을 그릴 당시의 화가 나이가 50대 중반이니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탈색된다. 그래서일까. 노란 원피스에는 어쩌면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지도 모르겠다. 책도 시간을 견디어낸다고 보았나. 아니면 붉은 단심을 담고 있는 내용인가.


앤 레드패스(Anne Redpath : 1895–1965)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로 실내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그녀가 화사한 색깔을 사용하게 된 데에는 모직 디자이너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에딘버러 미술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스코틀랜드여성화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녀는 의자나 컵과 같은 친근한 실내용품들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대상들을 그리면서 식탁보나 스카프와 같은 직물들을 사용하여 패턴내에 다시 패턴을 더하였다. 이 그림에서도 여인의 노란 원피스의 검정과 회색 무늬 패턴이 눈길을 잡아끈다. 구도며 색상에서 전체적으로 마티스와 보나르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스코틀랜드 색채주의의 전통을 물려 받은 에딘버러 화파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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