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폴 피셔
쇼파에 모로 누워 책을 보던 여인이 문득 책을 떨어트리고 생각에 잠겨 있다.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걸까. 책의 내용중 일부가 과거를 회상케 했거나 앞으로의 일을 꿈꾸게 했나 보다. 생각은 항상 다른 생각들을 몰고 다닌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다시 또다른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 들의 갈래가 고구마 뿌리처럼 줄줄이 따라 나온다. 눈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 살풋 선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생각들은 말 그대로 몽상이 된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그 몽상들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폴 피셔(Paul Fischer: 1860-1934)는 코펜하겐 태생의 덴마크 화가이다. 원래 폴란드에서 살다 덴마크로 이주한 유대인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도 화가였으나 나중에는 페인트와 광택제 제조업으로 성공하였다. 그런 연유로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았다. 덴마크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도시 생활을 묘사하는 것들이 많아 "코펜하겐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파리로 건너가 머무르면서 색상 활용이 보다 풍부해지고 밝아졌으며, 스케일도 넓어져 코펜하겐을 벗어나 스칸디나비아와 이탈리아, 독일 등의 정경으로 확장되었다. 동시대인 중에는 칼 라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재로는 일광욕하는 여인이나 누드를 그린 작품들이 많고, 툴루즈 로트렉에 고무되어 포스터에도 흥미를 가지고 작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