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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12. 2017

잠자는 미녀

92-라파엘리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 잠자는 미녀, 1873, 캔버스에 유채,  101.0 x121.3 cm, 개인소장

책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책을 보다 스스르 눈이 감기면서 잠에 빠져드는 경험도 은근 달콤하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보는 경우에는 십중팔구 그렇게 된다.  어느 순간 손끝에서 책을 탁 놓으면 바로 그 순간이 꿈나라로 들어가는 때이다. 그래도 그림 속 여인은 졸음이 몰려 오는 순간에 한쪽으로 책을 밀쳐 놓고 잠에 든 모양이다. 책이 펼쳐진 채 얌전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대개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놓기 때문에 나중에 일어나 보면 페이지가 접히거나 꾸겨져 있기 십상이다. 심지어 잠버릇이 심한 경우에는 찢기는 때도 있다.


장 프랑수아 라파엘리(Jean-François Raffaëlli: 1850- 1924)는 파리 태생의 프랑스 화가이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유복한 가정에서 평안하게 살았는데, 아버지 사업이 파산하는 바람에 평탄했던 삶이 갑자기 꾸겨져 버렸다. 청소년 때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다 화업에 뜻을 두고 본격적으로 그 길로 접어 들어, 파리 에콜데보자르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하지만 3개월 정도 그림을 배운 것이 정식 공부의 전부였다. 초기에는 의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으나, 뒤이어 어려운 시기의 경험을 토대로 농민, 노동자를 비롯해 파리 교외의 넝마주이와 같은 밑바닥 생활상을 주로 그렸다. 이후로는 도시의 일상생활이나 거리풍경으로 그림의 주제가 바뀌었다. 사실주의 화풍이었지만, 드가의 초대로 1880년과 1881년 인상주의 전시회에도 참여하였다. 하지만 인상주의 그룹 일부에서는 그를 인상주의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파엘리가 그린 인물화나 초상화는 많지 않다. 드물긴 하지만 그의 인물화는 선묘가 강한 단색 계열의 풍경화와 달리 부드러운 필치와 색감을 보여준다. <잠자는 미녀>의 경우도 부드러운 색조의 인상주의 색채가 엿보인다. 이 그림을 그릴 때의 화가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아직은 꿈 많고 패기와 열정이 가득한 때이다. 동화 속 "잠자는 미녀"는 긴 잠 속에서 자신을 깨어줄 왕자를 기다린다. 어쩌면 화가도 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잠재된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깨워지는 순간을 기원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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