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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Feb 15. 2017

무대 아래 주인공

87- 노먼 록웰

노먼 록웰, 극장의 청소부, 1946, 캔버스에 유채, 108 x 84 cm, 개인소장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간 다음의 텅빈 극장 안이다. 걸레자루와 들통을 준비하고 앞치마까지 두른 나이 지긋한 두 여성 청소부들이 객석에 앉아 있다. 하지만 청소도구는 한쪽에 밀어놓고 청소할 생각은 아예 접어 둔 채 무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맨앞 줄의 의자에도 비슷한 인쇄물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관객이 놓고 간 공연 책자인 듯 싶다. 오른쪽의 할머니는 초점이 잘 맞지 않은 것처럼 떠듬떠듬 읽어 내려 가는 표정이고 그보다는 더 젊어 보이는 왼쪽의 청소부는 그것이 답답하여 "어디, 내가 볼께요" 하며 직접 끼어들어 야무지게 읽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 공연한 극의 줄거리나 출연했던 배우의 프로필이라도 읽고 있는 것일까.  나이 먹어 몸만 늙었지 그래도 마음만은 꿈 많았던 20대 처녀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똑같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여인의 마음인 것이다. 또한 아까 이 자리에 앉아 있던 돈많은 귀부인이나 지금 앉아 있는 청소부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공연이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그래" 하는 호기심이 두 나이 많은 여성 청소부들로 하여금 해야 할 일마저 잊고서 읽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같이 책자를 읽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무대 위에는 당연히 여주인공이 멋진 공연을 하였을 것이다. 막이 내리고 빈 객석을 청소하는 순간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의 무대인 사람들이 있다. 그 삶의 무대에서 모든 사람들은 주인공이다. 비록 박수갈채는 없을지라도  자신이 꿈꾸는 인생의 다음 막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빛나는 삶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 그림은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 1894-1978)이 그린 것으로 1946년 4월에 발행된 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의 표지 그림으로 쓰였다. 그는 1916년 <유모차를 끄는 소년>으로 맨처음 표지 그림을 그린 이후 1963년 마지막으로 <존 F. 케네디의 초상화> 표지를 그릴 때까지 47년 동안이나 이 잡지의 표지그림을 그렸다. 포스트 지에 그가 그렸던 그림은 모두 322점이며, 이 그림은 그중 238번째 그린 그림이다. 


록웰의 아메리카는 진부하지만 희망적이고 매력적인 생각이나 꿈의 총집결체이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다양한 제스쳐와 표현은 마치 무성영화가 그런 것처럼 과장된 미소나 찌뿌림을 통해 다분히 코믹한 장면들을 포착하고 있다.  그는 지난 시간대의 아메리칸 드림의 일상을 때로는 지나치게 달달하게 때로는 지나치게 짜게 그려낸다. 어린 시절 그 시대를 직접 살았거나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던 사람들에게 그는 아련한 회상의 추억을 선물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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