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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09. 2017

시간은 멈추어도 삶은 계속된다

90- 알베르 마르케

알베르 마르케, 서 있는 여인 누드, 1910, 개인소장


전라의 여인이 서서 책을 보고 있다. 있음직한 일상적 장면은 아니다. 따라서 그림의 초점은 책보다는 여인에 있다. 벽에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여인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곳은 화가의 아틀리에이다. 화가는 알베르 마르케이고, 모델은 화가의 연인인 이본이다. 그녀의 본명은 에르네스틴 바쟁이다. 아마도 화가는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렇게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림이 원래 정지된 시간의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지만, 화가는 그 시절 자체를 영원히 멈추고 싶었을 것이다.


알베르 마르케 ( Albert Marquet: 1875-1947)는 보르도 태생의 프랑스의 화가이다. 마티스의 친구로 초기에는 야수파 진영에 참여해 활동하였으나 나중에는 과감한 색채보다는 색채의 조화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화풍으로 변모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인상주의의 계보의 연장선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강변이나 바다를 그린 풍경화가 그의 주요한 그림 주제였다. 일생 동안 지중해 연안과 센 강 주변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던 주제인 풍광과 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색과 빛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지녔으며, 특히 수면 위에 반사되는 빛의 묘사는 탁월하다. 예컨대 <파리 노틀담의 비오는 날>(1910) 작품에서 비에 젖은 도로나 비가 떨어지고 있는 강물의 묘사는 너무나 뛰어나, 마치 그 빗물이 화면 밖으로 흥건히 넘칠 것같은 착각까지도 불러일으킨다.

 

마르케의 그림은 인물이 없거나 윤곽으로만 가볍게 처리한 풍경 그림이 다수이다. 하지만 1910년과 1914년 사이에 인물화나 누드를 그린 작품들도 꽤 있다. <서있는 여인 누드> 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여인의 알몸으로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것 역시 빼어난 솜씨이다. 시간은 정지되었지만 삶은 계속된다. 많은 화가들이 모델과 연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마르케의 경우도 이본과 평생을 함께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결혼을 한 것은 마르셀과였다. 마르케는 이번에도 물론 아내를 그린 드로잉이나 초상화를 남겼다. 그림 속 여인도 앞날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 화가를 전혀 쳐다보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시선을 책에만 두고 있다. 그래도 멈춘 시간은 햇빛으로 화사하고 찬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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