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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0. 2017

신의 선물, 착한 세금 <고다이버>

03- 스티븐 제임스의 <고다이버>와 존 콜리어

세금은 예나 지금이나 악명이 높다. 심지어 세금을 걷는 세리까지도 악의적 비난의 오명을 면치 못한다. 역사적으로도 폭정에는 늘 과도한 세금 문제가 한몫하였고 이를 계기로 민란이나 혁명이 발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착한 세금이라니! 신이 관여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다이버(Godiva)는 "신의 선물"(Gift of God)이란 뜻의 고대 영어 어원인 Godgifu 또는 Godgyfu가 라틴화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 부인으로 레이디 고다이버가 있었다. 그녀는 과중한 세금으로 허덕이는 농민들의 실상을 보고 남편인 머시아 백작 레오프릭에게 세금을 줄여 달라고 청원하였다. 영주는 아내의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불가능할것 같은 제안을 한다. 즉,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온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다이버는 고민 끝에 이 치욕적인 제안을 기꺼이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들 역시 영주 부인의 고귀한 뜻을 살리고자, 고다이버가 알몸으로 마을을 돌 동안 거리에 나오지 않고 집의 창문도 모두 닫고 커튼을 쳐서 일체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한다. 결국 고다이버의 이 과감한 행동으로 영주는 세금을 낮추지 않을 수 없었고, 고다이버는 두고두고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버, 1897, 허버트 아트갤러리미술관


전설 같은 이 이야기는 예술이나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지금도 코벤트리 대성당 앞 광장에는 말을 탄 고다이버의 동상이 있다. 그림으로도 여러 화가들의 버전이 있는데, 특별히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다이버>(1897)가 눈에 띈다. 붉은 천을 두른 백마를 타고 알몸으로 마을을 도는 고다이버를 전면에 크게 부각시켰다. 그녀는 한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들어 가슴께를 살짝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고 있다. 마을은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이 적요만 흐른다.


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도 있는데, 스티븐 제임스의 <고다이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소재로 쓰이긴 하나 단지 배경을 이룰 뿐 진짜 이야기는 그 사건 이후에 벌어진다. 이후 고다이버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고다이버의 사랑을 매개로 한 일종의 역사소설인 셈이다. 시대적 배경은 1057년부터 이후 30년간에 벌어진 영국의 격변기이다. 주요 인물은 예의 머시아 백작부인 고다이버와 그녀를 사랑하는 코벤트리의 견습재단사 앨드볼드, 역시 그녀를 사랑하는 웨섹스 백작 해럴드이다.


원래 고다이버 이야기에는 훔쳐보는 탐이라는 인물이 같이 등장한다. 재단사인 그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몸의 영주 부인을 보지 않기로 하였음에도 몰래 훔쳐 보게 되는데, 나중에 그 사실이 발각되고 그는 장님이 되어 죽는 것으로 귀결된다. 소설에서는 여기에 착안하여 등장인물로 탐 밑에서 일하는 젊은 견습재단사 앨드볼드를 중요인물로 삼아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실제로 고다이버를 엿본 사람은 탐이 아니라 앨드볼드라는 설정이다.


앨드볼드는 우연히 고다이버를 본 이후 연모의 정을 품게 되고 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간직한 채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는다. 동시에 웨섹스 백작 해럴드도 고다이버 사건을 전해 듣고서 호기심이 발동해 직접 고다이버를 찾아가는 등 연심을 키워 나간다. 원래 머시아 백작과 웨섹스 백작은 정치적으로 숙적 관계이다. 소설은 레오프릭 백작 사후 불안정한 정치 지형 변화 속에서 영주간 권력투쟁과 후계자 없이 영국 에드워드 국왕이 죽으면서 승계를 둘러싼 암투, 노르웨이의 침략과 프랑스의 왕권 승계 개입까지 중세 유럽의 권력 각축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는 몇몇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상상력을 가미하여 흥미진진하게 내용을 전개한다. 영국판 궁중비사를 읽는 느낌이다. 상비군이 없던 시대 왕권의 취약성도 일깨워 준다. 권력유지와 확대 수단이었던 정략결혼이 횡횡하던 시절에 백작부인과 하인간의 사랑이 과연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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