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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2. 2017

행운을 부르는 14번째 사람

04- 수잔 브릴랜드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과 르누아르

수잔 브릴랜드의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은 동명의 르누아르의 그림을 소재로 르누아르를 주인공으로 해당 작품의 제작 과정은 물론 화가의 개인사나 당시 프랑스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나 일상 생활의 단면을 보여 준다. 일종의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미시사회사로도 읽을 수 있다. 르누아르가 어떻게 이 작품을 제작하려고 했는지, 이 작품을 그리는 과정은 어떠 했을지에 대한 소설적 상상력이 장장 640쪽에 걸쳐 펼쳐진다. 


르누아르가 아직 성공하기 전 궁핍한 상태에서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나 어려운 여건에서도 물감을 사고 모델료를 충당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들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한토막씩 나오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탕기 영감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물감을 사면서 "프러시안 블루" 색을 주문하는데, 당시 보불전쟁의 여파로 프러시아에 대한 프랑스의 반감으로 드러내 놓고 물감색을 지칭하지 못하고 애둘러서 지목하여 판매하고 구입하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르누아르의 다양한 개인사를 사실과 상상력으로 잘 버무려 놓았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부상을 당한 이야기는 실제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적 재미를 위해 <뱃놀이 하는 사람들의 점심>의 모델중 하나인 알폰소 푸르네즈와의 러브라인도 살짝 집어 넣었다. 분량이 다소 부담이 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읽힌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인물 또는 그림에 대한 작품 34점을 사이사이에 넣어 놓고 있어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르누아르,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 1880-1881, 캔버스에 유채, 130 x173cm,  워싱톤DC 필립스컬렉션


그림의 배경은 프랑스 근교 샤토 지역의 센 강변에 위치한 메종 푸르네즈 레스토랑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람들은 파리 근교의 센 강 유역 관광지에서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겼다. 철도망이 확충되면서 도시 근교의 다양한 야외 관광지로의 이동시간이 짧아져 관광유흥객의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배를 빌려 뱃놀이를 하거나 낚시도 하고 모여서 술과 음식을 즐기고 그곳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림에서도 차양 너머 강변 사이로 요트와 철교가 살짝 보인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르누아르의 친구나 동료들로 젊고 이상적인 초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무대가 되는 센 강변의 레스토랑 2층 테라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림의 소장처인 필립스 컬렉션의 설명 자료에서 번호를 붙여 등장인물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인물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맨뒤로 탑해트를 쓰고 있는 8번 인물은 아마추어 역사학자이자 미술수집가인 편집자 샤를 에프뤼시이다. 그는 보다 편한 복장의 갈색 코트와 모자를 쓰고 있는 5번 인물인 시인이자 평론가 주울 라포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앞 중앙에서 유리잔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는 6번 여인은 여배우인 엘렌 앙드레이다. 그 왼쪽 앞으로 모자를 쓰고 뒷모습으로 앉아 있는 4번 인물은 바롱 라울 바르비에르로 프랑스 식민지 사이공에서 근무한  전직 시장이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으로 난간에 기대있는 3번 여인 알폰소 푸르네즈와 담소중이다. 소설에서 알폰소는 르누아르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오른쪽 상단 구석에 모여 한 여인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11, 12, 13번의 세 인물들은 각각 관료인 유진 피에르 레스트링구에즈, 예술가 폴 로트, 여배우 잔느 사마리이다.


전면 오른쪽에 의자를 돌려 뒤로 앉아 있는 9번 인물은 르누아르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이고 후원자인 구스타브 카유보트이다. 평소 배타는 것을 좋아했던 카유보트인 만큼 모자를 비롯해 뱃사람 복장을 하고 있다. 그는 7번 여인 여배우 앙젤레와 10번 인물인 이탈리아 언론인 마기올로와 어울리고 있다. 맞은편에 개를 얼르고 있는 1번 여인은 알린 샤리고로 나중에 르누아르의 부인이 된다. 그녀 뒤로 난간을 등지고 기대어 있는 2번 남성은 이 레스토랑의 주인 아들인 알폰스 푸르네즈 주니어이다.


그런데 이 자료의 설명에서 하나 놓친 것이 14번째 인물이다. 자세히 보면 8번 인물 샤를 에프뤼시의 등 뒤로 얼굴만 살짝 나와 있는 인물이 바로 그이다. 원제를 직역하자면 "뱃놀이 파티의 점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인데, 파티를 준비할 때에는 14번째 참석자를 미리 대기시켜 놓는다고 한다. 파티 참석자의 숫자가 13명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13이라는 불길한 숫자에 대한 터부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샤를: 나는 내가 열네번째인 줄 알았소. 이 그림을 살리기 위해서 투입된 줄 알았지.

르누아르: 에밀이 돌아와  빈 자리를 채우지 않는다면 다시 열셋이 되겠는데.

피에르:  그렇지 않으면 끔직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최후의 만찬에서  열셋이 이층 방에 모였잖아요. 우리의 경우는  이층 테라스고.


결국 그림은 14번째 인물을 포함하여 모두 14명이 참석한 뱃놀이 파티의 점심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불운을 피하려던 화가의 노력 덕분일까. 그림은 1882년 제7회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화상이자 후원자였던 폴 뒤랑-뤼엘에게 바로 팔렸다. 이후 그의 아들이 1923년에 던컨 필립스에게 12만 5천 달러에 팔아 현재 미국 워싱턴 DC 필립스 컬렉션의 소장품이 되었다.


사실 행운이나 불운의 숫자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숫자를 보고 사람들이 행운을 바라거나 반대로 불길한 생각을 하는 심리 자체가 나중에 자기충족적으로 좋은 운과 나쁜 운을 불러 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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