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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3. 2017

미래에 대한 향수

03-오블리비언

<오블리비언>은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의 SF액션물이다. 미래의 지구는 외계인의 침공을 받고 이를 격퇴시키는 과정에서 핵무기가 사용되어 오염과 파괴로 더 이상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인류는 새 거처를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마련하여 집단이주를 하고, 주인공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파트너 빅토리아(앤드리아 라이즈버러 분)와 함께 팀을 이루어 본부의 지시를 받으며 시설의 유지보수 및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것이 잭 하퍼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이다.


그런데 잭은 알 수 없는 한 여인이 나오는 꿈을 자꾸 꾸게 되면서 현실에 의혹을 품기 시작한다. 사실 이 모든 "잭 하퍼의 세계"는 조작된 것이다. 그는 이중의 싸움을 전개한다. 먼저 자기정체성 위기 속에서 망각된 기억을 되찾는 내면의 싸움을 통해 왜곡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분투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한 대상을 상대로 한 싸움으로 이를 통해 온전한 자아를 다시 되찾고자 한다.  이 두 싸움은 자아의 존재를 되찾고자 하는 개인의 투쟁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는 우주전쟁이기도 하다.


그의 싸움은 먼저 강제된 망각으로부터 회귀에서 시작된다. 그 암시는 "바라보기"이다. 그는 바라본다.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광활한 순찰 지역의 황폐함이나 공중에 떠있는 기지의 첨단헬기 이착륙장에서 먼하늘의 막막한 구름정경을 지켜본다. 시선이 머무는 곳은 모호하다. 파괴된 세상으로 인한 혼란과 황폐함 그 자체이다. 이 바라보기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모호한 직시이지만,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 옮겨가면서 모호함을 더해 간다. 파손된 건물더미 사이 모래로 뒤덮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잔해 위에서 그는 다시 바라본다. 과거의 어떤 사건과 어떤 여인을. 그러나 아직 알 수 없다.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판넬에 템페라, 81.9 × 121.3 cm, 뉴욕 현대미술관


이처럼 모호한 현재와 과거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다 "바라보기"는 그림 하나와 대면한다. 바로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이다. 이 그림 속 여인은 화가 와이어스의 이웃인 크리스티나 오슬론이다. 그녀는 퇴행성 근육병으로 다리를 쓸 수 없어 앙상한 팔로 힘겹게 몸을 지탱한 채 멀리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화가는 그녀가 농장에 있는 부모의 무덤을 방문한 뒤 언덕 위의 집으로 기어서 돌아가는 것을 그렸다. 이 그림은 내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미천한 자의 존엄성을 보여 주고 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가 암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투사를 통해 곧 "새로운 잭의 세계"로 화한다. 잭 역시 기억의 장애 속에서 어떠한 역경을 겪더라도 저 멀리 있는 보금자리 집으로 가기를 원하고 가야만 한다. 그것은 한때 그가 아내와 평화롭게 살았던 과거를 상징하며, 이 과거에 대한 동경에 힘입어 앞으로 쟁취해야 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이로써 그림은 미래에 대한 가슴 찡한 향수가 된다.


그동안 잭의 세계는 망각이라고 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기초해 있었다. 그가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얻게 되는 유토피아적 전망은 이 망실된 기억과 자아를 되찾는 것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한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트로이의 목마 또는 가미가제의 형식을 빈 자신의 산화라는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싸움은 기억을 망각한 개인 잭의 자아찾기이면서 동시에 외계인의 침략에 맞선 인류의 생존전쟁이기도 하다. 잭은 나중에 기억을 매개로 다시 생환한다. 일종의 부활인 셈인데, 전체적으로 영화는 천년왕국 사상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영화 말미에 잭의 아내 줄리아가 딸아이와 함께 터잡은 새로운 거처로 생존 인류집단이 찾아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집단 커뮤니티의 재건을 뜻한다.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철저하게 파손된 과거 지구 문명에서 살아남은 작은 잔해에 불과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물로 쓰이고 있다.  즉, 망각된 기억을 재생시키는 도구이자 과거에 좋았던 천년왕국 시절로 되돌아 가기 위한 미래전쟁의 전망을 지시하는 강력한 모티브로 기능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잭의 아내 줄리아가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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