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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20. 2016

행복한 세상

03- 보테로

페르난도 보테로, 책읽는 여인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우리가 흔히 보는 통상의 형태가 아닌 불균형적인 비례를 가진다. 마치 튜브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부풀려진 고무풍선 인형 같은 인물과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 준다. 비례를 깨트림으로써 소재의 형태를 변형시켜 비틀어 보여 주는 전략은 특유의 해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옛 거장들의 걸작에서 소재와 방법을 차용하여 패러디한 작품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살찐 모나리자이다.

  〈책읽는 여인〉에서도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는 여인의 신체 비례를 한번 보라. 얼굴은 이목구비가 한쪽으로 쏠려 있고 나머지 뺨과 턱이 얼굴 보다도 더 크게 그려져 뭉툭한 목 부분과 이어져 있고, 몸통도 무슨 스모 선수마냥 과장된 볼륨감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손발도 통통한 채 전혀 비례에 맞지 않다. 명색이 누드이고 침대 위에는 진분홍색 시트까지 깔려 있지만 선정성이라고는 느낄래야 느낄 수가 없다. 그래도 목걸이나 귀걸이, 팔찌까지도 다 갖추었고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까지 했다. 노란 전등 불빛 아래에서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신나는 것인가 보다. 마치 기분 좋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침대에 모로 엎드려 누워서 마른 물장구를 치는 종아리 한짝이 위로 치켜 올라와 있다. 하지만 여인의 표정은 보테로의 여느 그림에서처럼 여전히 무표정하고 담담하다. 보테로가 그려내는 세상이 행복한 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느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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