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시 Apr 19. 2016

세월이 가면

22- 에밀 베르나르

에밀 베르나르, 책읽는 여인과 화병, 1887

    세월이 가면 모든 게 변한다. 아마 죽고 못사는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지나간 사랑의 추억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결코 잊혀질 수 없을 것 같은 얼굴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에는 잊혀지는 모양이다. 시간의 풍화작용 앞에서 살아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여전히 사랑의 모습이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있지 싶었다. 오히려 차마 잊을 수 없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그 눈동자 입술이 잊혀지지 않고 가슴 속에 살아있지 싶다. 그때 시인의 나이는 31살이었고 그렇게 요절하였으므로, 아마도 절절함이 담겨있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여인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얼굴이 없다. 달걀 귀신 같아서 조금  괴기스럽게 보일 정도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 얼굴을 잊은 걸까.  어쨌거나 여기에서 얼굴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화가의 전략이다. 그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광경을 단순화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에밀 베르나르는 명암이나 입체감이 없이 색채를 평면적으로 사용하고 윤곽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새로운 장식적 화법이 바로 클루아조니슴 화법이다. 이 화법은 중세의 아나멜 기법인 클루아조네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얼굴없는 이 그림은 화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는 사람마다  각자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1868-1941)는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고흐나 고갱과 교류하며 친구로 지냈다. 특히 고갱과는 20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브레타뉴 퐁타방에 같이 체재하면서 고갱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시 퐁타방에서 그렸던 이 두 사람의 작품들을 보면  누구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하지만 상징주의 창시에 대한 그의 역할을 고갱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중에는 사이가 나빠졌다. 그림만이 아니라 글재주도 있어 시작과 평론 활동도  하였다. 세잔을 만나 그의 화화관을 듣고 <회상의 세잔>이란 책을 쓰기도 하였다. 말년에서는 근대예술을 부정하고 고전주의적 작풍으로 되돌아 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다 나은 세상으로 열린 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