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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7. 2016

보다 나은 세상으로 열린 문

21 - 바스코브

바스코브, 도서관, 2000.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고, 그 사이로 다시 책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안쪽으로 벽면에는 개가식 서가가 보인다. 높은 층고가 시원스럽고, 위로는 높다란 유리창으로 자연채광이 들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책상마다 스탠드 조명이 조도를 밝히고 있다. 스탠드 불빛을 받은 책들의 면면이 모두 하얗게 빛난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전경이다.

  지금까지 국내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주로 수험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어 왔다. 내 경험으로도 중고등학교 학생 시절에 시험을 앞두고 주말에 집 주변에 있는 종로도서관이나 정독도서관을 종종 이용했었다. 남산 국립도서관을 이용할 때는 이용자들이 많아 아침 일찍 줄을 서가며 입장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의 자리가 금방 동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라기보다는 시험공부를 하는 곳으로 생각되었고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이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대학도서관은 전공 공부상 소장 도서의 대출 이용이 빈번해졌다. 그렇지만 폐가식이어서 도서관 1층 로비의 색인카드에서 필요한 책의 등록번호를 찾아 도서대출신청서를 작성하고 기다렸다가 책을 받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야 특별히 서고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때도 반(半)개가식이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최근에 새로 건립한 서초동의 국립도서관을 이용해 보았는데, 열람실이 개가식으로 되어 있어서 직접 책을 열람해 보고 필요하면 바로 내 자리로 가져와서 읽을 수 있어 편리했다. 오히려 개인 소장물을 별도 보관실에 거치해 두고 일체 관내로 반입해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함으로써 오직 도서관 소장 도서만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독서실이 아닌 명실상부한 도서관으로 기능하고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집 앞에서 건너다 보이는 인왕산 아래 종로도서관의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다. 도서관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서인 듯한데, “보다 나은 세상으로 열린 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책 읽는 공간으로서 도서관 이용이 활발할수록,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보다 나은 세상이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앤 바스코브(Anne Bascove)는 1946년 필라델피아에 태어났으며, 필라델피아예술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자신의 관련 그림 작품들을 모아 세 권의 책을 편집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책이 떨어져 펼쳐져 있는 곳』(Where Books Fall Open: A Reader's Anthology of Wit & Passion, 2001)이다. 책읽는 이들을 그린 그림들이 다수 있다. 뉴욕의 다리를 그린 연작도 유명하다.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랄파크 공원관리사무소, 허드슨강박물관 등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현재 뉴욕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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