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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26. 2016

내 마음의 호수

07- 오거스터스 존

오거스터스 존, <푸른 호수>,1911

 ‘잔잔한 내 가슴에 파문이 일다’라는 표현이 있다. 아마도 사람마다 마음 속에 자그마한 자신만의 호수를 간직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게 크지 않은 호수가에 한 여인이 누워 있고 손에는 노란색 표지의 책을 들고 있다. 파란 호수 물빛이 산뜻한 느낌을 주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구릉 언덕의 반사 잔영이 두터운 터치로 호수 물에 잠길 듯 표현되어 있다. 책을 읽다 말고 호숫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인의 마음 속 호수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오거스터스 존(Augustus Edwin John: 1878-1961)이 그린 <푸른 호수>는 호수가를 배경으로 책을 들고 누워 있는 여인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모델은 누이의 모델이었던 도로시 맥닐(Dorothy McNeil)로 화가에게 일생동안 영감을 주었다. 도도(Dodo)라는 애칭으로 불리웠으며, 첫 번째 아내인 아이다 네틀쉽(Ida Nettleship)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반려자로서 같이 살았다. 이 그림은 영국의 에버딘 미술관(Aberdeen Art Gallery & Museums)에 소장되어 있다.

  오거스터스 존은 영국 태생으로 로댕의 연인이었던 그웬 존(Gwen John)의 동생이기도 하다. 웨일즈의 텐비에서 1878년 출생하였으며, 1894년에서 1898년까지 런던의 슬레이드예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렘브란트, 엘 그레코, 후기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대가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은 피터 폴 루벤스로부터 받았다. 당대에 가장 성공적인 초상 화가였으며, 토마스 하디, 조지 버나드 쇼, T. E. 로렌스, W.B. 예이츠, 윈스턴 처칠 등 명사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단순히 외양보다는 주체의 인격을 잡아내려고 시도하여 자신의 초상화를 ‘심리학적 초상화’라 불렀다.

  1897년 학창 시절에 바다에서 다이빙하다가 바위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해, 성격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과거의 단정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보헤미안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집시 모자에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금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며, 카페 로얄에서 다른 예술가나 작가, 서커스 연예인이나 마술사 들과 어울렸다. 집시 문화와 스타일에 매혹되어 보헤미안 공동체를 이루며 집시 생활을 하였다. 나중에는 집시 트레일러 이동주택으로 웨일즈, 에이레, 도셋 등지를 여행하면서 생활하였다. 여기저기 뿌린 자식이 100여명에 이른다는 과장된 풍문이 나돌 정도로 집시의 화려한 방랑 생활을 즐겼다. 공동체 생활을 배경으로 ‘서정 판타지’와 같은 작품에서처럼 집시들의 생활을 그림으로 그렸으며, 일명 보헤미아의 왕으로 불려졌다. 실제로도 1936년에 집시법률협회(Gypsy Law Society)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국제예술가협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철학이나 사회시스템으로서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며 말년까지도 반핵운동과 같은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실천하는 화가의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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