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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29. 2016

우리가 보는 것은

09-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I, 1933

  커텐이 좌우로 밀려 있고 창은 열려 있다. 전경에 나무 한 그루가 정면으로 위치하고 들판을 지나 멀리 숲이 보인다. 그 위로 흰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오른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그런데 다시 보면 창 앞에 이젤 위로 캔버스가 놓여 있다. 화폭에 그려진 것은 바로 그 전경이다. 오른쪽에 기다랗게 수직으로 올라간 좁은 폭의 흰 줄대는 화폭의 옆면 흰 천이고 중간중간 박음질이 되어 있다. 창 앞의 풍경도 이 화폭의 옆면만큼 불연속으로 끊어진 채 다시 실제 풍경 선으로 이어지고, 그림 속의 흰 구름도 하늘의 흰 구름과 이어진다. 얼핏 하늘을 나는 새처럼 보였던 것도 기실은 캔버스를 고정시켜 지지하는 부착물이다. 교묘한 착시를 불러 일으키는 구도로 화가의 의도가 읽히는 작품이다.

  그림 제목이 “인간의 조건I”(Human Condition I)이다. 참 뜬금없이 난해한 명명이다. 르네 마그리트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조건>은 창문의 문제를 제시한다. 나는 캔버스에 의해 가려진 풍경의 부분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그림을, [즉] 방의 내부의 전망을, 방안 창문 앞에 두었다. 그리하여 그림에서 재현된 나무는 방 외부에 있는 [나무 즉], 그림 뒤에 있는 나무를 가렸다. 관람객이 보기에 그것[나무]은 그림[속의 그림] 위에, 즉 방의 <내부>에 있고, <동시에> 사유에 대해서는 실재적 풍경 속에, 즉 <외부>에 있다. 바로 이렇게 우리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외부에서 세상을 보지만 우리는 우리 속의 재현을 볼 뿐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단순한 눈속임수의 그림이 아니다.  “하나의 이미지는 사유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이다”라는 마그리트의 말마따나 이 그림은 곧 마그리트의 사유이다. 그림은 외부세계를 바라보는 일종의 창문틀이며,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계에 대한 체험을 구현한다. 그림이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나 모사가 아니란 뜻이다. 굳이 말한다면 그림은 일종의 환상이다. 여기에서 환상이란 객관적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적인 틀이란 의미이다. 그 점에서 인간은 세계를 조망하는 주체적 틀인 환상이라는 창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실재와는 다른 어떤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면서도 그 자체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다. 이 그림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을 가시화한 그림이다. 우리는 그림에 보이는 풍경이 실재한다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보이지 않는 환상을 볼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마그리트는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마그리트의 이러한 사유는 바깥 풍경이 바다로만 바뀐 채 1935년작 <인간의 조건II>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인간의 조건I (The Human Condition I),1933. 캔버스에 유화,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벨기에 레신느 출생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일상적인 사물들을 낯선 환경에 두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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