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리처드 E. 밀러
리처드 밀러의 여인 그림들은 거울을 보거나 목걸이를 들고 있는 그림들이 많다. 이 그림도 화장대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는 여인을 그리고 있다. 다른 그림에서는 직접 손거울을 들고 몸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도 많지만 여기에서는 화장대 뒷모습으로만 거울을 짐작케 한다.
창밖의 파스텔톤 풍광은 해변가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 끝이 수평선이 아니라 해안을 따라 육지가 쭉 돌아가고 있어서 이 해변이 만 안에 위치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광경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집은 바닷가에서 위로 어느 정도 올라온 언덕배기 고지에 있다. 여인은 이제 막 화장을 마치고 나서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보던 끝에 어떤 생각에 불현듯 골똘해진 모습이다.
거울도 또다른 창이다. 창문 밖으로 날개짓하는 꿈들을 좇아 창가에서 밖을 응시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실내에서 거울을 대면해 마음의 창문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거울 앞의 여인을 그린 리처드 밀러의 그림 가운데 <명상>이란 제목의 그림들도 두어 편 있다.
거울 앞에 홀로 있는 여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애잔한 느낌을 준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 싯구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가 생각나서일까. 화면 가득 남색 톤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화장품 그릇의 손잡이 장식만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말 그대로 홍일점이다. 색조의 통일감이 주는 안정감이 지나쳐 깊고도 암울한 심연 속으로 빠져 들지 않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다.
리처드 밀러의 화려한 실내 여인 그림들은 미국 인상주의의 최상의 성취로서 찬사를 받는다. 이 <창가의 여인> 역시 아름다운 빛과 풍부한 질감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런 그림들가운데 하나이다. 그럼에도 후반부 작품으로 가면 전작들과 달리 화면 색조도 어두워지고 그림 주제도 더 침울해진다. 화가 자신의 인생 황혼이 보다 더 가까워져서 그랬을까.
리처드 E. 밀러(Richard. E. Miller; 1875~1943):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태생의 인상주의 화가. 20세기초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미국 화가 집단인 파리 근교 지베르니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인상주의와 근대적 요소를 조화스럽게 잘 결합시킨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