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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5. 2016

백일몽

19- 앤드류 와이어스


앤드류 와이어스, 한낮의 꿈, 나무에 템페라, 51.0×68.5㎝, 1978, 아먼드 해머 미술박물관 소장

  열려진 창문으로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온다. 푸른 하늘로 보아 한낮이다. 그런데 이 백주대낮에 전라의 여인이 침대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천장에 매달은 모기장이 망사 커튼처럼 적당히 시선을 막아준다. 여인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이 그림은 앤드류 와이어스가 그린 247개에 달하는 헬가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자신의 농장 근처 이웃인 독일 태생의 헬가 테스토르프 (Helga Testorf)를 모델로 1971년부터 1985년까지 이 연작을 그렸다. 그들이 처음 화가와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와이어스의 나이 쉰넷, 헬가의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15년 가까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와이어스는 자신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비밀에 부쳤으며, 헬가 역시 자신의 남편에게 비밀로 하였다. 헬가는 원래 전문적인 모델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림은 근처에 있는 화가의 친구인 프롤릭 웨이마우스(Frolic Weymouth)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다. 당초에는 사후에 공개하는 것으로 하였지만 1986년에 백만장자인 레오나드 앤드류즈(Leonard E.B. Andrews)에게 연작의 거의 전체가 천만 달러에 팔리면서 전격적으로 공개되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맥락과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연작 형태로 지속적으로 작품화한 예는 미국 회화사에서 아주 독특한 사례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같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단순히 화가와 모델 사이만은 아니었 게다.  하지만 그림이 공개되고 나서 헬가는 사라졌고, 와이어스도 입을 굳게 다무는 바람에 온갖 억측만 분분했을 뿐 그들 관계의 정확한 내막은 끝내 베일에 쌓인 채 덮어지고 말았다. 결국 화가와 모델 사이를 떠나 그들이 함께 꾸었던 어떤 꿈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낮의 꿈, 즉 백일몽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헬가나 앤드류 와이어스 자신도 이 꿈같은 시간이 무한정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꿈꾸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문득  백일몽이었음을 깨닫게 되듯이.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이다. 펜실바니아의 작은 도시인 채즈포드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려 명성을 얻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이웃집 소아마비 여인이 초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그린 <크리스틴의 세계>가 유명하다. 어려서  몸이 허약하여 홈스쿨링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유명한 삽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정식 미술교육을 받았다. 예술가 집안으로 형 헨리트와 누나 캐롤라인도 화가였으며, 그의 아들 제이미 역시 화업을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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