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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6. 2016

창없는 창

20 - 피에르 보나르

피에르 보나르, <클리시 광장>,  1912, 캔버스에 유채, 138×203cm, 브장송, 조형예술미술관

  대개 창 밖 풍경은 실내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실내 정경과 함께 주로 배경이 된다. 하지만 여기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의 <클리시 광장>에서 창 밖 거리 풍경은 그림의 전경을 이루고 있다. 거리에 인접한 가게의 창 밖  테라스에서 본 거리 풍경이기 때문이다. 파리 클리시 광장 거리의 생동감 있는 활력이 그대로 화면 속으로 들어와 있다. 보나르는 1912년 친구인 조르주 베송 부부의 주문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클리시 광장은 몽마르트의 서쪽 경사면에 접해 있으며 이 곳에서 방사 형태로 여러 거리들이 뻗어 나가는 중심인 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복잡한 곳이다. 오가는 행인들의 분주함과 소란스러움, 그 복잡함 사이를 뚫고 지나는 승용차, 원근감에 의해 자그맣게 명암으로만 촘촘히 묘사된 거리 건너편 행, 후경을 이루고 있는 빽빽한 건물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도시의 한낮 거리를 깊이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일종의 카페식당인 브라스리 베플러(Brasserie Wepler)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거리 풍경이다. 그림의 상단부에 가게의 차양이 보이는데, 거기에 불어로 저녁식사나 야식을 뜻하는 “soupers”와 식당이나 맥주집을 뜻하는 “brasseri(e)”가 적혀 있는데, 안에서 보고 있어 글씨가 거꾸로 보인다. 좌측과 우측에 각각 웨이터 한 명들이 서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는데, 테라스 안쪽에 있어서 그늘져 있는 관계로 화면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명암상으로 짙게 표현되어 있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밝게 그려져 있다. 햇볕이 직접 드는 도로는 거의 흰색에 가깝다. 심지어 차밑의 그림자조차 하얀 그림자이다. 여인들의 모자에 햇빛이 반사되어 흡사 눈이 쌓여 있는 듯 하얗다.  햇빛눈이다.

  그림 속 거리 건너편 건물에는 무수한 창들이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이 바라보고 있는 이쪽에는 정작 창이 뒤로 빠져 있어 창 없는 창밖 풍경이 되었다. 보나르의 그림 기법 상 실내 정경을 위주로 하는 앙티미슴(intimisme)의 확장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창이 없어짐으로써 거리가 실내로 들어오거나 거꾸로 실내가 거리로 다가선 형국이 되었다.

  요즘은 통유리로 되어 있는 가게 건물들이 대세라 거리에 면해 있는 커피 가게나 음식점의 창가에 앉아 있다 보면 문득 누가 누구를 구경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창안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무심하게 구경삼아 쳐다볼 수 있지만, 반대로 창밖을 지나면서 창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이 있으면 안과 밖을 구분하게 되고 자연히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창을 걷어내면 밖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안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창은 당연히 전망을 보여 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창 없는 창은 그 전망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 빛으로 충만한 거리와 부엌, 베란다 등 집 안팎의 풍경, 정물과 고양이 등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즐겨 그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 풍경을 실내 정경과 함께 담아내는 구도의 그림들이 많다. ‘앙티미슴 Intimisme'이라고 불리는 일상의 정경을 담은 양식은 그의 작품의 커다란 특징중 하나이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대상에서 벗어난 색을 기초로 한 추상에 가까운 풍경화를 그리며 독자적인 색채의 세계를 확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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