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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2. 2016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어

09- 존 싱어 사전트(1)

존 싱어 사전트, 모기장, 캔버스에 유채, 57.1×71.7cm, 1908, 디트로이트미술관 소장

   얼핏 보면 미장원에서 파머하면서 책읽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 제목이 모기장이다. 놀랍게도 머리와 상반신에 모기장을 쓰고서 책을 보고 있다. 대단한 열의이다. 초로의 두 여인이 의자에 앉거나 쇼파에 누워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요즘처럼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여건이라면 방충제와 방충망으로도 밀폐시키거나 차단하면서 충분히 더위를 피할 수 있으므로 굳이 모기장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옛날에는 더위를 견디려면 당연히 창문이나 문을 열어 놓고 가끔 부는 바람이라도 고대할 수밖에 없었고, 아예 집밖에 나가서 더위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자면 여름철에 모기나 파리 같은 불청객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때 요긴한 것이 모기장이다. 내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한여름에는 방안 전체에 커다란 모기장을 쳐놓고 온 식구가 그 안에서 잠을 자고는 했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볼일이라도 생길라치면, 모기장 한쪽 귀퉁이를 제 몸 하나 빠져 나갈 만큼만 살짝 들어올리고는 그 틈으로 모기 한 머리라도 들어올 새라 재빨리 빠져 나갔다 들어오고는 했다.

  그런데 그 모기장을 머리에 쓰고서 책을 읽는다니.... 그 발상도 대단하고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여름철에 책을 보려면 더위도 더위지만 날파리나 모기들이 달려들어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머리에 뒤집어 쓰는 모기장이야말로 한때는 요긴한 용품이었겠다 싶다. 요즈음에야 벌을 치는 양봉업자나 벌집을 제거하는 119대원에게서나 필요할까?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주로 영국에서 활동한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초상화가인 오귀스트 C. 뒤랑(Auguste C. Duran)에게 그림을 배웠다.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으나, 1884년 파리전시회에 출품하였던 《마담X》가 대담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선정성 파문을 일으키자, 1886년 영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초상화로 상류사회 인물들을 묘사한 작품이 많으며,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기법과 색채 등을 사용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이루었다. 생애 후반기에는 풍경화와 풍속화도 다수 그렸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으며,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며 살았다.    이 그림은 사전트가 지중해에 있는 스페인령 섬인 마요르카(Majorca) 여행중에 그의 누이인 에밀리와 그녀 친구인 엘리자 웨지우드를 그린 것이다. 그의 모기장 그림은 이것 말고도 하나 더 있다. 전작을 그린 지 4년 뒤인 1912년에 그린 작품으로, 한 여인이 침대에 누워서 역시 모기장을 쓰고 책을 보다 까무룩 잠들어 있는 그림인데, 미국 백악관 소장이다.

 

존 싱어 사전트, 모기장, 캔버스에 유채, 57.5 × 72.4cm,  1912. 백악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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