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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2. 2016

익명으로 남다

10 - 존 싱어 사전트(2)

 

존 싱어 사전트, 마담 고트로(Madame Piesrre Gautreau), 1883.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파리 최고의 초상화가를 꿈꾸며,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인 1883년부터 그의 경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초상화 한 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이듬해인 1884년에 전시하여 프랑스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마담X>란 제목의 초상화였다.

  그림의 주인공은 당시 프랑스 사교계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받던 코트로 부인(Madame Gautreau)이었다. 고트로 부인과는 이미 1881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사전트는 자신의 친구인 델 카스티요(del Castillo)에게 편지를 써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도움을 달라고 해서, 마침내 고트로 부인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림을 완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여러 번의 습작을 거쳐 그녀의 특징적인 옆모습을 강조하는 자세로 그리기로 하였다.

  1883년에 그린 수채화 그림 역시 그 습작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 고트로 부인은 무릎에 책을 펼쳐 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른 일부 데생 습작에서도 책을 보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다른 초상화에서도 자주 쓰이듯이 책이 교양있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습작에서와는 달리 본 작품에서는 책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1884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된 유화로 그린 초상화 제목은 그림의 모델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익명의 <마담 X>로 표기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사교계에서 워낙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바로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그리고 깊게 파인 이브닝 드레스와,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지나치게 흰 피부, 뒤틀린 오른팔과 흘러내린 어깨끈 등을 들어 이 작품이 퇴폐적이고 외설적이라고 비난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100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악평과 함께 사회적으로 거센 논란이 일자, 고트로 부인의 가족은 사전트에게 그림을 철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전트는 전시 기간 동안 그림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에 시달려, 사전트는 결국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과도한 노출로 물의를 빚었던 드레스의 어깨 끈을 다시 수정하여 온전하게 고쳐 그렸다. 그러나 "이제까지 내가 그린 작품 중 최고"라며,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란이 잦아들자, 마담 고트로의 지명도도 덩달아 사라졌다. 당사자로서는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뒤늦게 1891년 프랑스 화가인 구스타브 쿠르트와 (Gustave Courtoi)에게 다시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그러나 원판을 흉내내 포즈나 옷을 비슷하게 그리기는 했지만, 결코 같은 분위기나 힘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류는 아무리해도 아류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 스캔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하나 있다.  데보라 데이비스(Deborah Davis)가 쓴 것으로 국내에는 <존 싱어 사전트와 마담X의 추락>"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원제는 "Strapless: The Rise of John Singer Sargent and the Fall of Madame X“이다. 사전트의 본 작품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판매되었고, 현재 여전히 익명의 <마담X>란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어깨끈을 고쳐 맨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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