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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3. 2016

시는 가난을 먹고 산다

11- 칼 슈피츠벡

 

칼 슈피츠벡, 가난한 시인, 36×45cm, 1839.

  옥탑방 구석 가운데 새는 빗물을 막으려는 듯 천장에 끈으로 매달아 놓은 찢어지고 덧내어 꿰맨 낡아빠진 우산 아래로 시인이 누워 있다. 오른손은 운율을 맞추는 모양이고 왼손에는 원고를 쥐고 있어 펜대는 도리없이 입에다 물고서 시상을 다듬고 있는 중이다. 방안은 추운 듯 담요 속에서도 외투를 껴입고 있는데, 오른쪽 팔굼치에 구멍이 나있을 정도로 남루한 복색이다. 그래도 마치 외출하려는 듯 당시 남자의 상징적 치장 아이템이었던 넥타이의 원조인 흰 크라바트(cravat)를 목에 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중년을 넘긴 듯 돋보기를 내려 쓰고 흰 잠자리 모자까지 쓰고서 원고를 들여다보는 모습은 다소 희극적이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집안 정경이 너무도 비루하다. 왼편으로 난로가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불을 지핀 흔적이 없다. 연통이 제 쓰임새를 다하고 있다면야 거기에 턱하니 모자를 걸어둘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정 추우면 난로를 때기는 땐 모양이다. 하지만 장작을 마련하지 못해 대신 원고를 태웠는지 아궁이에 원고 쪼가리 일부가 남겨져 있다. 그 아래에 원고 뭉치가 두 뭉치나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불쏘시개로 쓰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원고 뭉치 상단에 로마숫자 Ⅲ, Ⅳ가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1편과 2편은 벌써 다 태워 버린 모양이다. 그나마 방안 깊숙이 자그맣게 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밝고 따사롭게 비추어서 다행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 지붕위로는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다시 시인으로 돌아와 자세히 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냥 매트리스 위이다. 애초에 침대조차도 마련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추위에 침대마저 태워 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위로 여러 권의 꽤 두툼한 책들이 놓여 있고 그 중 한 권은 참고하는 중인 듯 펼쳐져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시인은 시가 있어서 행복했을까.


  칼 슈피츠벡(Carl Spitsweg:1808-1885)은 독일 출신으로 그 자신이 시인이자 화가였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약사로 키우려 해서 뮌헨 대학에서 자격증까지 땄으나, 독학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풍자 그림을 많이 그렸다. 혹자는 그를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세 가지 요소들, 즉 현실주의와 공상, 유머를 잘 결합시킨 천재 화가로 부른다. 어떤 이는 그의 그림을 비유하길, 1840년대 독일의 옛날 도시들을 배회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좋아하는 그림 순위에서 이 <가난한 시인> 그림을 모나리자에 이어 두 번째로 꼽았다. 인기가 좋기도 하고 그림의 크기도 작아서 도둑들의 표적이 되어 두 번이나 도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 그림은 현재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덱(Neue Pinakothek)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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