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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4. 2016

라만차 기사의 탄생

12 ‐ 구스타프 도레


   어느 대형서점의 홍보 캐치프레이즈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있는데, 이 그림야말로 거기에 딱맞는 듯하다. 이 그림은 구스타프 도레가 그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불역판 삽화이다. 1부 1장의 첫 번째 그림이다.

   시골 귀족 돈키호테는 미식가여서 전골과 살피콘 요리를 즐기고, 금요일에는 완두콩, 토요일에는 베이컨과 계란, 일요일에는 새끼 비둘기 요리 하는 식으로 요일별 특식을 먹는 등 먹는 데만 재산의 3/4을 쓴다. 그리고 나머지로는 축제 때 입을 가운과 벨벳 바지, 덧신을 사는 등 치장하는 데 돈을 쓰는 한량이다. 그는 우리로치면 무협지라 할 수 있는 기사소설에 빠져들어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밤을 새서 책만 들여다 본다. 재산관리도 소홀히해서 남아있는 너른 논밭마저도 이 기사소설을 사쟁이는 데 다 팔아 써버리고 만다.

   그의 서재에는 온갖 종류의 기사소설 책이 널려있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돈키호테는 그 내용에 심취해 자신이 마치 주인공인양 팔을 높이 치켜 세우며 덩달아 칼을 휘두르고 있다. 방안에는 책에 나오는 온갖 모험담속의 기사들과 괴물들이 등장하여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는 사로잡힌 공주가 구출을 간청하는 모습도 보이고, 무용을 부려 물리친 거인의 효수된 목도 걸려 있다. 맨앞 줄에는 집안관리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집주인의 행태를 비웃으며, 생쥐 두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결국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편력기사가 되어 일대장정의 대모험의 길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책이 사람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라만차의 기사인 돈키호테가 탄생하게 되는 그의 망상적 정신세계를 이처럼 단 한 컷의 삽화로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구스타프 도레의 솜씨가 일품이다.


   구스타프 도레(Gustave Dore: 1832‐1883)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태생으로 15세때 출간 삽화집 < 헤라클레스의  노동>을  펴낼 정도로 일찍부터 그  재능을 드러내 보였다. 선에 의한 묘사력이 색에 의한 표현보다  뛰어나  많은  호응을 받았다. 10대부터 발자크, 밀턴, 단테의 작품 삽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20대초에 바이런 경의 작품에 이어, 영국의 성경 삽화를  그렸다.  동화 빨간 두건,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비롯해,  돈키호테, 실락원, 신곡  등 많은 문학작품의 삽화를 그렸다. 50여 평생 동안 약 10만 장의  스케치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루 평균 6장 꼴이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는데, 이쯤되면 예술이 아니라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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