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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6. 2016

도를 구하다

13  - 니콜라스 로에리치


니콜라스 로에리치, 지혜의 책

 

  책 속에 길이 있다 했던가.  멀리 히말라야의 하얀 준봉들이  보이고 구름의 바다를 건너 다시 험난한 산등성이를 앞두고 바위산  위에  한 사내가 책을 보고 있다.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모양새나 삭발한  머리가 언뜻 보기에 승려  같기도 하다.  건너편 봉우리에는 사원 같은 건조물이 오롯이 서 있다. 굳이  사원이 아니더라도  이런  광대한 대자연의 품이라면 어디에  자리해 있던지 그곳이 곧 세속을 벗어난 성스런 곳일 듯싶다. 승려가 읽고 있는 것은  아마도 경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속에 길은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지금 승려는 길, 즉 도를 구하고 있으니.

  한번쯤은 저 성스러운 설산을 찾아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그 밑에서 책을 펼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무심히 망연하게 성산을 대면하고 싶다. 바람은 축원을 비는 깃대에 매단 형형색색 타르쵸(tarcho) 소원들이 소리내어 소망을 빌 정도로 나부껴도 좋겠다. 거기에 삶에 지친 내 어깨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햇살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니콜라스 로에리치(Nicholas Roerich: 1874-1947)는 러시아의 화가이자 저술가, 철학자, 사상가이다.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태어나, 티벳과 히말라야, 인도 등지의 아시아 풍속과 풍광에 심취하여, 그곳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다, 인도 펀잡 지방에서 생을 마쳤다. 대학 때 미술과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러시아 고대 과거를 가장 잘 그리는 화가로 인정받았고, 무대디자인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건축에도 흥미를 보여 러시아를 돌아다니며 그린 요새, 수도원, 교회나 기타 기념물들도 갈채를 받았으며, 건축물 보호 노력과 맞물려 수십 년간 그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교예술 영역에서도 활동을 보였다. 아내의 영향으로 동방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 점차 신비주의로 경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다른 러시아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묵시록에 빠져 들기도 했다. 혁명 이후 핀란드로 가족 전체가 이민 갔다가, 영국으로 옮겨 갔다. 이후 작품 전시차 미국에 건너가 지인들의 도움으로 3년 정도 체류하면서 전시 이외에도 오페라 무대디자인을 맡기도 하였다. 뉴욕 정착 기간 동안에 예술가와 시민단체를 연결시키는 조직과 요가 협회 등을 만들어 운영하였으며, 나중에 “니콜라스 로에리치 박물관”의 모태가 되었다. 뉴욕을 떠나 펀잡, 카슈미르, 라다크, 카라코람 산맥 등 아시아 지역으로 여행을 다니다, 인도 지역에 머물러 활동하였다.

  러시아 및 아시아 지역의 역사화, 전투화, 종교화, 풍경화 등을 일련의 시리즈 형태로 다수 그렸다. 히말라야 연작을 비롯해, 동방의 기치, 성소, 이콘화, 아슈람, 메이트레야, 티벳 성채, 쿨루, 칸, 라하울, 바다 등 다수의 연작 시리즈가 있다. 화풍으로는 비잔틴화, 사실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의 다양한 형식을 취하였다.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풍경화 위주로 본다면 화려한 색감과 구도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있어, 그 환상적인 형태와 제재가 특이한 이국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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