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시 Apr 07. 2016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14- 에밀 필라


에밀 필라, 도스토예프스키의 독자, 1907, 98.5x80 cm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그의 작품들은 제정 러시아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던 대전환기의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키고 있는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문제작들이다.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던 동유럽의 체코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을 것이다.


  에밀 필라의 이 그림은 제목을 <도스토예프스키의 독자 Reader of Dostoevsky>로 하고 있는데, 그림 속 인물은 책의 주제에 몰입해 심각하다 못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뇌에 찬 모습을 하고 있다. 색상도 붉은 색과 청색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데, 독서하고 있는 실내 공간은 붉은 색조로, 창밖 세상은 차갑고 어두운 청색조로 표현되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전면의 붉은 벽 한쪽에는 예수의 십자가상이 걸려 있다. 세상의 구원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를 갈구하고 바라 볼 수 있는 사내의 눈은 형체가 회색으로 뭉개져 있어 암울한 정도가 아니라 참혹할 지경이다. 그의 희구와 투쟁 의지는 이미 전부 소진되어 몸마저도 탈진된 상태이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의 징조를 찾는다면, 창백한 얼굴이나마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화가가 같이 활동했던 오스마(Osma) 그룹의 첫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며, 1905년 프라하에서 열린 뭉크 전시회의 영향을 받았으며,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자신 세대의 분노와 회의를 반영하여 표출하고 있다.


  에밀 필라(Emil Filla: 1882-1953)는 체코 화가로서 조각가와 저술가로서도 활동하였다. 젊었을 때는 경영학을 배우고 한때나마 보험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프라하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카데미에서는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대 초인 1904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미술 대가들을 접하였으며, 특히 램브란트에 매혹되었다. 초기 화풍은 후기인상주의에서 시작하여 보다 표현주의적인 색채 구사로 넘어갔다. 1910년부터는 피카소와 브라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큐비즘 양식으로 작업하였다. 1920년대에는 ‘종합적 큐비즘’의 경향을 전환하여 조각, 장식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병행하였다. 하지만 1929년부터는 입체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점차 벗어나려고 시도하여, 선과 형태에 표현주의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회화와 조각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나타내려한 결과, 1930년대에는 인간과 동물의 싸움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이는 파시즘에 의해 위협받고 있던 당시 의 사회적 상황에 맞서는 저항적 의지를 고취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를 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