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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09. 2016

단순하게, 담백하게

16 -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 책 읽는 누드, 1994.  77.8 x 92.3 cm

  책 읽는 여인 그림치고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렸다. 단순한 선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점들이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일부에서만 제한적으로 색을 써서 동양화에서와 같은 여백의 미를 가지고 있다. 젊었을 때는 화려한 인생을 꿈꾸지만 살다보면 그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그 이면에는 그에 따른 댓가도 지불해야 함을 깨닫게 되는지라 오히려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뀌게 된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화가의 나이가 70대 초반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욕망과 허세의 기름끼가 다 빠진 담백한 그림이 되었다.

  팝아트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예술의 소재를 삼았다. 팝아트가 출현했던 1960년대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 의문을 제기했고 미술전문가들은 단호히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덧 팝아트는 이제 친숙한 예술의 한 분파로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미술품이 기업의 비자금이나 뇌물의 유통수단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데, 어느 해인가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그 대상 미술품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노출되어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덕분에 팝아트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은 1923년 뉴욕 맨하탄에서 태어나 1997년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가장 뉴욕적이고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가이다. 1960년대 초기 작품은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이었던 미키 마우스와 도날드 덕을 그린 것이었다. 나중에 스스로 말하길 애초에 그 그림은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그렸던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술을 탐색하고 있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다. 저급문화로 알려진 만화를 회화에 도입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 스타일은 사물의 윤곽을 검고 굵은 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며, 공간은 밝은 원색으로 채운다. 특히 기계적인 인쇄로 생긴 점(dot)들을 활용하는데, 음영은 이 점의 크기를 달리하거나 밀도로 나타내었다. 이 점들은 그가 직접 드로잉하고 채색한 것이 아니다.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하여 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책 읽는 누드”를 포함한 일련의 누드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말년인 1993년이었는데, 실제 모델을 쓰지는 않았다. 그림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들은 1960년대 만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캐리커처에서 옷차림을 빼고서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온화한 느낌이되 의도적으로 어떠한 물성도 갖지 않은 육체를 가진 여인으로 그려졌으며, 전혀 자연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밝은 색감과 대담한 선으로 묘사된 이 여인들은 전혀 부끄러움도 타지 않은 채 당당하게 그림에 등장한다. 제목으로는 명색이 누드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전혀 육감적이지 않아, 여성이라는 형식보다는 화가의 시각언어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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