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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13. 2016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는

18 - 메리 카셋


메리 카셋, 손주들에게 책읽어 주는 카셋 부인, 1888

  책은 상상력이다. 물론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또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많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지식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상상력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책이 인류 지식의 보고인 것은 담고 있는 지식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꿈꾸는 모든 상상력의 출발점이라서 그렇다.

  그 상상력의 시작은 어려서 아직 문자해득력이 없었을 때, 부모가 읽어주는 동화책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지금이야 영상매체가 지배적인 힘을 발휘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지만, 예전에야 어른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로부터 아이들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해 동화속 세상도 만들고 주인공의 무용담도 실감나게 전개해 나갔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이 보여주는 세상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스스로 스토리와 상황을 상상해 즐겼던 것이다.

  그림에서도 돋보기를 낀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야기 한 구절이라도 놓칠 새라 아이들은 할머니 곁으로 바짝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지어 제일 어린 막내는 책읽는 할머니의 표정까지도 새까만 눈동자가 좇고 있다. 노안에 잘 보이지 않는 책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 가는 할머니를 채근하는 손자들의 조급한 마음이 화폭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말년에 이처럼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늙어가는 삶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 그림은 메리 카셋의 오빠 알렉의 아이들과 어머니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카셋이 처음 이 그림을 팔았을 때 가족 모두가 크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다시 그림을 사들여야 했다.

 메리 카셋(Mary Cassatt: 1844–1926)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아레게니시티(지금은 피츠버그시가 됨) 출생의 여류 화가이다. 아버지가 주식중개상인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화가를 꿈꾸면서부터 아버지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 들어갔으나, 느린 학업 진도와 함께 선생이나 남학생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에 실망해 혼자 공부하다가 끝내 그만두고, 22살에 유럽으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되지 않은 에콜드보자르에는 들어가지 못하여 개인 아틀리에에서 교습을 받으며, 수년 동안 살롱전에 출품을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보불전쟁으로 잠시 미국으로 돌아와 있으면서 의기소침해져 한때는 화가의 길을 포기하려고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파리로 되돌아가 28살인 1872년에 마침내 살롱전에 <축제에 꽃을 던지는 두 여인>이 받아들여져 전시되었고 팔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1877년 에드가 드가로부터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후 인상파 운동에 합류하여 1886년까지 활동하게 된다. 그녀는 파리의 인상파운동에 직접 참가한 유일한 미국인이자 여성이다. 카셋은 드가와 교류하면서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파스텔화와 에칭 분야에서는 드가의 지도도 받았다. 하지만 1886년 이후 자신을 어느 회화 운동과도 일체시키지 않았으며 다양한 회화 기법들을 시도하였다. 주제 면에서는 여인과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들을 주로 그렸다. 특히 1900년 이후로는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는 어머니와 아이 그림에만 집중하였다. 1904년 그녀는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두 차례 수술 끝에 차례로 양쪽 눈을 모두 잃는 비운으로 끝내는 실명한 채 7년 남짓 살다가 82세에 프랑스의 메니르 테리뷰에서 사망하였다. 어머니와 아이들 그림을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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