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시 Apr 21. 2016

탐욕과 함께 하는 신의 말씀

24 - 쿠엔틴 메치스

쿠엔틴 메치스, 대부업자와 그의 아내, 1514.

  중세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왼쪽 남자 앞에는 금화가 수북히 쌓여 있고, 혹여 함량미달의 가짜 금화라도 섞여 있는지 확인할 요량으로 조심스럽게 금화를 저울에 달아보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의 여인은 그의 아내로 남편의 그같은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녀 앞에는 책이 놓여져 있고 이제 막 책장을 넘기고 있는 중이다.

  책은 여러가지를 상징하는데, 여기에서는 성스러움의 상징물이다. 그것은 채색 성경 사본으로 책에 그려져 있는 채색화가 성모자를 나타내고 있는 것에서 확인된다. 그녀는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이다. 땀 흘리지 않고 남의 노력의 대가를 고리로 취하는 사악한 세속적 탐욕의 전형인 고리대금업의 금화와 성스러운 말씀인 성경이 한 책상 위에 조화스럽게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고리대금업을 죄악시했다. ‘시간은 하느님의 것인데, 시간을 담보로 돈을 번다는 것은 하느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12세기에는 아예 교회법으로 고리대금업을 금지시켰으며, 고리대금업을 하는 기독교인에게는 파문 조치를 하였다. 하지만 상업이 발달하면서 현실적으로 고리대금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에서는 고리대금업에 관대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특히 네덜란드 신교는 상한선을 정해 놓고 고리대금업을 허용하였다.

  덕분에 대부업자도 이제는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직업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 이 그림의 주문자가 꼭 이 대부업자 자신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신흥졸부인 대부업자의 탐욕을 풍자하거나 비꼬기 위해서 제작된 그림이라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대부업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선량하게 그려져 있다. 오히려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생업을 더 번창하게 이끌어 가기를 기원하기 위해 이 그림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주문자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화가도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원형 거울 속에 비친 창문의 모습에  성십자가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쿠엔틴 메치스(Quentin Matsys)는 16세기 초 안트베르펜 유파를 창시한 플랑드르의 화가이다. 1466년경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중부의 브라반트주(州)에 있는 루뱅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대장장이자 시계 제조공이어서 대장장이로 출발하였으나, 어느 화가의 딸과 사랑에 빠진 뒤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해 화가가 되었다. 1491년 안트베르펜 화가 길드에 가입한 후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등장하는 어리석고 기괴한 인물들을 소재로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을 그리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여유로운 삶을 살다가, 1530년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하였다. 이 그림은 한때 같은 플랑드르 화가였던 피터 폴 루벤스가 갖고 있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증명사진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