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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24. 2016

마음의 평온

25-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톨로메의 피아(La Pia de Tolomei), 1868-1880, 캔버스에 유채, 105.4 × 120.6 cm, 캔자스대학 스펜서미술관 소장

  부부지간이나 부자지간과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탐욕이 끼어들게 되면 남들과 다름없이, 또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남들 보다도 더 가혹해진다. 흔히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랑은 부부지간에만 나누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림 속 여인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이야기 속 주인공인 피아(Pia)로서 포악한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지금 유폐되어 있다. 남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탐욕은 애욕이다. 항상 욕심이 문제이다. 아내는 결국 나중에 남편으로부터 독살로 죽임을 당한다.

  모로 기울어져 있는 여인의 고개와 목이 조금 이상하다. 지나치게 목이 길고 두꺼워 불균형적이다.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적이다. 보는 사람의 시선이 바로 여인의 얼굴로 향한다. 학수고대하고 있는 남편으로부터의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왼쪽 끝의 해시계는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여인의 마음을 상징한다. 여인은 생각한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무릎 위의 깍지낀 두 손의 모습도 자연스럽지 않고 뒤틀려 있다. 잘못된 그들 관계처럼. 과거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때 이렇게 해야지. 정말이야. 남편의 마음만 붙잡을 수 있다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이 그림을 제인 모리스를 모델로 그렸다. 제인 모리스는 같이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로 활동하던 친구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사별한 아내 엘리자베스 시달을 모델로 여러 그림을 그렸듯이, 로세티는 제인 모리스를 모델로 여러 편의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서 로세티는 마치 제인 모리스가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환상을 꿈꾸었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마음의 유폐로부터 스스로 갇히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같은 상황에서 심리적 위안이나 정신적 안정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여인은 신앙 생활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하단에 묵주와 책이 보이는데, 아마도 성경이나 기도서일 것이다. 책이 어떤 경우에는 격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처럼 마음의 평안을 주기도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는 영국의 시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화가이다. 1848년에 윌리엄 홀만 헌트와 존 에버렛 밀레와 함께 라파엘 전파를 만들었다. 라파엘 이전 시기의 이탈리아 화가들의 화풍을 모방하여, 솔직하고 단순한 자연 묘사와 문학과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삶은 모델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의 아내였던 엘리자베스 시달이 10년 가까이 모델이었고, 이 그림에서의 제인 모리스 역시 그의 모델이자 뮤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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