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시 Apr 26. 2016

펜보다 강한 붓

26 - 에드가 드가

에드가 드가, 뒤랑티의 초상, 1879, 탬페라와 파스텔

  영문법을 공부할 때 나오는 비교법 관용어구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이 칼보다 강한 펜을 붓이 이긴 사례가 미술사에 있다.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이 그림의 모델인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에드몽 뒤랑티(Edmond Duranty) 이다. 뒤랑티는 사실주의 문학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태동기의 인상주의 화가들을 옹호하였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1870년 2월 뒤랑티는 마네가 전시회에 보낸 그림 두 점에 대해 극도로 짤막한 평을 하였다.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분노한 마네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뒤랑티를 찾았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파리 바티뇰 가에 있는 이 카페에 자주 모였으며, 뒤랑티 또한 그 멤버중 하나였다. 마네는 뒤랑티의 멱살을 잡고 고전적인 결투 신청 방식으로 그의 뺨을 갈겼다. 뒤랑티가 사과를 요구했으나 응락하지 않아 결국 2월 23일 오전 11시 상제르망 숲에서 검으로 결투를 치루게 되었다.

    에밀 졸라가 마네의 대리인을, 폴 알렉시스가 뒤랑티의 대리인을 각각 맡았다. 검이 휠 정도로 결투는 격하게 치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뒤랑티가 오른쪽 가슴을 두 차례나 찔렸다. 그것으로 마네의 명예가 회복된 것으로 선언되었고, 결투는 끝났다. 화가의 붓이 평론가의 펜을 꺽은 것이다.

    이 둘은 그래도 친분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결투가 그의 태도에 영향을 준 것이었을까. 3달 후 마네의 살롱전 전시에 대한 비평에서 뒤랑티는 무려 120줄에 달하는 평을 했다.

  1876년 뒤랑티는 ‘새로운 회화’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뒤랑티는 초상화를 그릴 때 지켜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초상화는 한 사람의 신체적인 외견이나 옷차림을 통해서도 모델의 도덕적인 면모가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야 한다. 또한 모델의 직업 때문에 드러나는 인상적인 면이나 특징을 포착하려는 태도, 모델의 가정환경과 같은 자세한 지식을 얻어내고자 하는 꼼꼼한 관찰 습성은 초상화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이다.”


뒤랑티의 초상화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드가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뒤랑티는 드가가 이 그림을 그린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드가는 그의 미망인의 생계를 돕기 위해 뒤랑티의 유품 경매에 자신의 작품 4점을 내놓기도 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평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