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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Nov 25. 2016

[영화] 차이나타운

여성이 그린 느와르

보통 범죄를 다루는 영화에 대한 내 선입견은 '남성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팜므파탈이나 누이 혹은 피해자와 같은 역할로 한 두명 나오는 게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은 여성이 주축이 되는 느와르 영화라고 해서 호기심이 컸다.





아기일 때 지하철 캐비닛 10번에 버려져 '일영'이라는 이름이 생긴 아이는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눈에 띄어 차이나타운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진다.



엄마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조직의 보스로서 누구보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목숨을 가져가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밥 먹었으면 일해야지', '쓸모없으면 죽일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일영은 이러한 엄마를 따르며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는 험한 일을 한다. 어딘가 엄마와 닮은 면이 많았고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에 있어 찾을 수가 없는 채무자의 아들인 석현에게 이자를 받으러 간다. 석현은 항상 긍정적이고 친절했으며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청년이었다. 일영은 그러한 석현에게 따뜻한 감정과 연민을 느끼고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조금씩 변한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엄마는 보고만 있지 않았다. 관객들이 '이 영화가 달달한 멜로 장르였나'라고 생각할 무렵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엄마는 일영의 변화를 막기 위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급하게 먼저 나서서 석현을 죽인다. 여러 가지 일로 입지가 흔들리게 된 엄마는 결국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게 되고 일영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맡긴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점 첫 번째는 앞으로의 일을 암시하는 대사와 행동이었다. 부분마다 복선이 깔려있어 마침내 그 일이 터졌을 때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러한 경험들을 반복하다 보니 어떤 대사가 나오면 뭔가 불안한 예감이 먼저 들었고 퍼즐처럼 장면을 맞추어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두 번째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다. 영화는 2시간이지만 모든 이야기를 친절하게 다 풀어주지 않는다. 결정적인 부분에서도 직접적인 묘사를 생략한 뒤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고는 한다. 대사를 통해 인물의 과거와 경험을 유추하거나 상상하며 여백을 채워나간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으로 가득 채워 흥미를 유도하는 다른 범죄 영화와는 차별점이 있었다.




세 번째는 영화 전체에 퍼진 독특한 색감이었다. 그 덕분에 익숙한 곳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한글 간판이 늘어서있는 어느 한 거리가 마치 영화 '무간도'의 배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엄마의 근거지인 사진관에도 단순한 어두움을 넘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과 무늬,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기대는 했지만 역시나 그를 넘어서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험한 분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는 미모들 때문에 거친 캐릭터가 잘 발휘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말투나 행동, 표정이 그 우려를 다 삼켜버렸다.



엄마는 일영에게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고 일영이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길을 알기 때문에 여느 엄마와 같이 나쁜 일은 막아주고 좋은 일은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교육방식은 많이 달랐다. 엄마가 석현을 죽인 이유가 딸처럼 여기는 일영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기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일영이 겪는 심경의 변화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겪어온 삶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면서 석현의 진심이 궁금했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지만 일영에게 그토록 친절을 베푼 이유가 뭘까, 석현도 일영에게 마음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행동하며 아버지가 빌린 돈의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석현도 빚을 받으러 오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컸을 것이다. 하지만 문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다르게 체구가 작고 여린 여자가 서있었고 거기서 순간 연민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석현이 일영의 마음을 흔들어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돌리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으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일영이 석현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입은 촌스러운 원피스는 캐릭터에 정말 잘 맞는 의상이었다. 그 나이 또래와 다른 삶을 살며 치장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났다. 마냥 거칠 것만 같던 일영에게서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옷이라 귀엽기까지 했다.


이전에 봐오던 범죄영화와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여러 가지로 상상하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어서 끝나고 난 뒤의 허무함을 느끼지 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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