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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Jan 10. 2017

[영화/도서] 동주, 처럼

영화와 책으로 만난 윤동주


교과서에서 익히 봐왔고 책꽂이에도 그의 시집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던 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나왔다. 저예산의 흑백 화면으로 만든 영화는 그의 시처럼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때때로 윤동주의 시가 은은하게 낭독되어 감동을 더한다.

영화를 보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그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고, 그중에서 김응교 교수가 쓴 '처럼'을 읽었다. 이 책은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소개하며 그의 일생을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편했다. 이번에는 영화 '동주'와 책 '처럼'에서 만난 윤동주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영화는 윤동주뿐만 아니라 그의 고종사촌 형이었던 송몽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송몽규에 대한 소개가 빠지지 않고 나와있다. 그만큼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는 꽤 외향적이어서,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윤동주와 대비되었다. 저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서로 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방법이 달랐다. 윤동주는 글로 애국심을 표현했다면 송몽규는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이었다. 송몽규도 글솜씨가 있어서 그가 쓴 산문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윤동주는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당시의 사회 문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시인도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내면의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니 윤동주의 시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만돌이


만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전봇대 있는 데서

돌재기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전봇대를 겨누고

돌 첫 개를 뿌렸습니다.

-딱-

두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세 개째 뿌렸습니다.

-딱-

네 개째 뿌렸습니다.

-아뿔싸-

다섯 개째 뿌렸습니다.

-딱-


다섯 개에 세 개…

그만하면 되었다.

내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육십 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 종이를 바쳤을까요

그렇잖으면 정말

육십 점을 맞았을까요


이번에 윤동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시인 윤동주라 하면 '별 헤는 밤', '자화상', '서시'와 같은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그의 작품 중에는 동시도 꽤 많았다. 이 '만돌이'라는 시를 꽤 오래전에 교과서에서 읽고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윤동주의 작품인지는 몰랐다.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현재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썼던 것으로 이 시기에는 자연과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동시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윤동주가 만년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시를 써 내려가는 장면이 참 좋았다. 짧은 구절에 많은 생각을 담아내는 시를 읽으면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예술의 정점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의 재즈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찰스 밍거스가 "간단한 걸 복잡하게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하게 만드는 것은 창의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길게 풀어서 말하는 것보다 짧고 강렬하게 말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을 표현해 내기 위해 몇 가지 단어들을 신중하게 고르고 배열하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를 읽을 때 되도록 그 시를 썼던 시기에 쓰인 다른 시와 함께 이해하면 좋습니다. 시집을 만들 때 어느 시인이든 시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목차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시집이 없다면 그 시가 탄생한 무렵의 다른 시와 함께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 분석은 독자의 의식으로 시를 재단하기보다는 시인의 시가 스스로 말하도록 시의 혼잣말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 김응교,『처럼』

영화에서 일본 순사가 윤동주의 작품에 담긴 시어들을 하나씩 짚으며 따져 묻자 '시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시험공부를 할 때처럼 단어를 알알이 떼어내어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것이 감상을 해치지 않는 방법이구나 싶다. 시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에는 독자의 의식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혼자 감상을 할 때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고민에 따라 시가 다르게 읽히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만큼 시에 쓰인 단어와 문장이 함축적이기 때문이고 이는 시의 또 다른 매력 중에 하나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당시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겪었을 일제강점기의 한 중간에서,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해자는 정작 피해자의 아픔을 살펴보지 못하지만 함께 고통을 겪는 피해자끼리는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는 이 시를 통해 어둠 속에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듬고 싶어 했다. 정병욱이 쓴 책의 다음 부분에서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다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病院)’이라고 써넣어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정병욱은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후배로, 윤동주가 남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일제강점기 속에서 지켜낸 사람이다. 당시에는 한글로 쓰인 책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책을 항아리에 넣어 집의 마룻바닥을 뜯은 후 묻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자필 시집 3부 중 하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신 말을 들으니까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못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윤동주가 자신의 죄목이 적힌 문서 앞에서 서명을 거부하며 했던 대사다. 사람으로서 꿈을 꾸고 재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자체를 부끄러워해야만 했던 이상한 시대에 그는 살고 있었다. 글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에만 있던 것들을 글로 만드는 순간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에 따른 비판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 문장, 한 단어마다 검열을 받고 감옥에 끌려가는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몸으로 나서서 무기로 저항했던 사람들에 못지않게 펜으로 대항했던 윤동주와 같은 사람도 적극적인 독립운동가였다고 생각한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1941.11.5.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의 작품들 중 내가 좋아하는 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하나씩 헤아리며 드는 그리움, 쓸쓸함, 부끄러움,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다잡는 의지가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시인과 함께 별로 가득 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긴 시라서 부분만 발췌하려다가 어느 부분도 생략하기 싫은 마음에 전문을 다 넣었다. 

윤동주는 시를 쓴 뒤 그 작품이 완성된 날짜를 아래에 적어두었다고 한다. 이 시의 마지막 연 앞에 있는 날짜도 사실 그러한 의미다. 원래는 마지막 연이 없었는데 첫 원고를 본 정병욱이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드네요”라고 하자 이후에 윤동주가 “지난번 정형이 ‘별 헤는 밤’의 끝 부분이 허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가 덧붙여보았습니다”라며 추가한 연이라고 한다. 시인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울 만도 한데 다른 사람의 감상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형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는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였고, 형의 노래는 이 겨레의 많은 어린이, 젊은이들이 입을 모아 읊는바 되었습니다. 조국과 자유를 죽음으로 지키던 형의 숭고한 정신은 겨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뼈에 깊이 사무쳤삽고 조국과 자유와 문학의 이름으로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빛나오리니 바라옵기는 동주형, 길이 명복하소서. - 1955년 발행했던 윤동주의 시집에 게재한 정병욱의 글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윤동주가 마지막에 추가한 연의 내용처럼 그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윤동주의 작품 활동에 만 27년이라는 짧은 시간만 허락될 수 있었던 점이 아쉽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자아 성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지금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그의 시가 없는 오늘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밤이 깊도록 시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했다. 독서에 너무 열중해서 얼굴이 파리해진 것을 나는 퍽이나 염려했다. 6조 다미방에서 추운 줄 모르고 새벽 두 시까지 읽고 쓰고 구상하고… 이것이 거의 그날그날의 과제인 모양이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프랑스 시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와, 프랑시스 잠의 시는 구수해서 좋고 신경질적인 쟝 콕도의 시는 염증(厭症)이 나다가도 그 날신날신한 맛이 도리어 매력을 갖게 해서 좋고, 나이두의 시는 조국애에 불타는 열성이 좋다고 하면서, 어떤 때는 흥에 겨워 무릎을 치기도 했다. 
- 윤영춘,『명동촌에서 후쿠오카까지』

윤영춘은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할 때 종종 만난 친척이다. 그가 쓴 위의 글에서 시와 문학에 푹 빠진, 한없이 열정적인 청년이 눈에 그려진다. 윤동주를 떠올리면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인데 여기에서는 시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시도 실컷 쓸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1940년 4월 어느 날 이른 아침, 연전 기숙사 3층. 내가 묵고 있는 다락방에 동주 형이 나를 찾아주었다. 아직도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조선일보 한 장을 손에 쥐고,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와 같이 산보라도 나가실까요?” 신입생인 나를 3학년이었던 동주 형이 그날 아침 조선일보 학생란에 실린 나의 하치도 않은 글을 먼저 보고 이렇게 찾아준 것이었다. 중학교 때에 이미 그의 글을 읽고 먼발치에서 그를 눈여겨 살피고 있던 나는 너무도 뜻밖의 영광이었다. 나는 자랑스레 그를 따라나섰다. - 정병욱, 『바람을 부비고 서 있는 말들』

"나와 같이 산보라도 나가실까요?"라는 말이 참 순수하고 다정하게 느껴져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아마도 윤동주는 '이 글을 쓴 사람과 말이 잘 통하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만나 서로 허심탄회하게 문학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엮은 세 개의 시집 중 하나를 맡길 정도로 믿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영화 '동주'를 개봉 당시에 보고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한번 더 보았는데, 한층 더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두 시간 동안 그의 삶과 시를 흑백 화면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윤동주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었지만 그 전보다 더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층 더 높아진 관심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더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를 연구하고 강연하는 김응교 교수의 책, '처럼'을 읽다 보니 하나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맹자, 키르케고르, 기독교 사상, 중국어, 한자 등등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쉬운 언어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따라갈 수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가 서로 만나서, 각자의 분야에서는 설명하지 못했던 점들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다. 이 책을 통해서도 다양한 분야의 무한한 연결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했다. 시간이 흐르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다 보면 윤동주의 시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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