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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Jan 01. 2017

[영화] 라라랜드 (LA LA LAND)

꿈을 좇는 어른들을 위한 환상동화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위플래쉬'의 감독이 이번에 새로운 음악영화를 내놓았다고 해서 참 반가웠다. '라라랜드'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약간 디즈니 같은 분위기의 판타지 영화인가 싶었는데 오프닝에 영어로 큼지막하게 뜬 'LA LA LAND'라는 타이틀을 보자 뭔가 미국의 LA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은 할리우드에서 꿈을 좇는 사람들이다. 미아는 배우를 꿈꾸며 수많은 오디션에 응시하고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은 전통 재즈의 명목을 이어나갈 클럽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아서 미아는 매번 오디션에 낙방하고 세바스찬은 사기를 당해 여기저기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둘의 만남이 처음부터 로맨틱한 것은 아니었지만 점차 서로에게 닮은 점을 발견하며 가까워진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위로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바스찬에게 잘 나가는 밴드에 합류할 기회가 주어진다. 밴드의 성향이 세바스찬이 추구하는 음악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고정적으로 많은 수입을 얻는 것이 미아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고 승낙한다. 밴드 활동으로 전국 투어를 하며 점차 미아를 만나는 시간은 줄어든다.


 

한편 미아는 자신이 쓴 극본으로 직접 무대를 연출하고 연기하였으나 실패한다. 하지만 그 무대를 인상 깊게 본 영화 관계자가 미아에게 캐스팅을 제의한다. 파리에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미아와 세바스찬은 결국 꿈을 위해 서로를 놓아주기로 한다.



시간이 흘러 미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의 오너가 되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미아는 딸을 유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우연히 어느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곳이 세바스찬의 클럽이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를 알아보았고 무대에 선 세바스찬은 미아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연주했던 곡을 피아노로 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가 서로 이런 선택을 해왔다면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세바스찬의 연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그러한 상상은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을 붙잡고 싶은 듯 세바스찬은 피아노 연주를 쉽사리 마무리 짓지 못한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돌아와 둘은 그저 멀리서 눈을 마주치며 웃는 것으로 끝난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그려본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 싸이, '어땠을까'


당시에 사랑했던 기억이 아름답게 남으면 이따금씩 '만약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하며 괜히 떠올려보게 된다. 세바스찬의 연주와 함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상상들이 아름다워서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운명이 있다면 꼭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 운명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영화를 관람하며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프닝에서 보았던 군무는 공연 무대의 앙상블을 연상시켰다. 여느 영화와 같이 컷을 끊지 않고 한 번에 롱테이크로 담아서 그러한 효과가 배가 되었다. 영화 제작 초기에는 이러한 롱테이크가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요즘은 감독의 의도를 증폭시키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덕분에 처음부터 주의를 사로잡았고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때와 상황에 맞는 춤과 노래를 중간중간에 배치시켜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었다.


 

뮤지컬의 현장감이라는 장점을 가져옴과 동시에 영화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배경과 특수효과를 담아 영상미를 높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극장에서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본다면 현장감은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만큼의 생생함은 아니지만 영화의 장점으로 충분히 커버되어서 만족스러웠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보며 떠오른 글이다. 결말에 가슴 아팠지만 딱 좋은 시기에 최고의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힘든 시절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용기를 낼 수 있게 격려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참 아름다웠다. 꿈을 좇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을 때 어떻게든 붙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 사람의 꿈을 존중했기에 가능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던 사람 중에 가수 지망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수를 꿈꾸는 것을 여자친구가 상당히 싫어한다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여자친구 입장에 서서,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면 놓아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원하고 꿈꾼다는 것은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고 내면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온전히 마음에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상대방의 그 부분만 떼어내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아주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변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걸 당사자가 만족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불만족을 견디겠지만 나중에는 결국 이별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모가 말하길, 한번은 파리의 센 강에 뛰어든 적이 있다고 했어요. 맨발로.
물은 차가웠고 한 달 동안 감기를 앓았어요.
그런데 그녀는 할 수 있다면 다시 할 거라고 했어요.


꿈을 꾸는, 어쩌면 바보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미아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얻은 오디션에서 부른 'Fools who dream'이라는 노래에 나온 가사의 일부분이다. 미아의 이모도 이동극단에서 배우를 하던 사람이었다. 꿈을 직업으로 삼아 일을 하지만 이동극단이다 보니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이모가 파리에 있을 때 이따금씩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타지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했었다며 이 노래를 시작한다.

바라던 바를 한 번에 이룬 정말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꿈 때문에 지독히 괴로웠던 경험을 해봤을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힘들다 보니 처음에는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던, 꿈을 가지게 된 계기를 원망했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꿈을 절대 꾸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미아의 이모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라니. 그만큼 꿈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절절하게 다가와 많은 감동을 받았다.


https://youtu.be/SXsqYs1l_IY

영화 라라랜드 OST 'Fools who dream'


꿈을 꾸던 사람들이 성장통을 겪다가 마침내 이루어내는 줄거리의 영화는 사실 낯간지러워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았더라면 관람하기 전에 많이 망설였을 것이고 결국에는 보지 않는 큰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위플래쉬에 이어 라라랜드도 참 좋았기 때문에 다미엔 차젤레라는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내놓을지 기대된다. 위플래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J.K. 시몬스를 라라랜드에서 잠깐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곳에서도 역시나 냉정한 이미지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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