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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Dec 12. 2016

[영화] 파리넬리(Farinelli)

명성 뒤에 숨겨진 아픔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영화 '파리넬리'의 포스터와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다가 한참 후에 다시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다.




이 영화는 18세기에 '파리넬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카를로 브로스키'라는 성악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실제 그의 삶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중세시대에 "모든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의 집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성 바울로의 언급이 성서에 기록되어있다는 이유로 당시 여성은 설교나 노래를 할 수 없었다. 이때 유행하게 된 것이 카스트라토인데, 소년들이 변성기가 오기 전 거세를 함으로써 맑은 목소리를 지니도록 한 것이다. 남성이지만 여성과 같은 고음이 가능하며 신비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파리넬리는 작곡가였던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와 함께 유럽으로 공연을 다니며 많은 인기를 얻는다.




파리넬리는 리카르도가 만든 곡으로 노래를 했지만, 그가 작곡한 음악은 어딘가 부족했다. 헨델은 파리넬리를 찾아와 그런 음악에 목소리를 낭비하지 말라며 비난했고 이 일로 형제는 헨델과 사이가 나빠진다.




형과 함께 헨델을 멀리하기는 했지만 파리넬리는 항상 더 나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자신을 비난하는 헨델을 미워하면서도 음악적 재능만은 높이 생각하여 그의 음악을 몰래 듣거나 아내가 훔쳐 온 헨델의 악보로 노래 연습을 한다.




파리넬리는 자신이 완전한 남성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강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노래를 할 때 외에는 카스트라토라는 사실이 항상 그를 괴롭혔다. 사랑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할 수 없었고 세상의 좋지 않은 시선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명성이 높아도 항상 불안해했으며 나중에는 형이 자신을 거세시켰음을 알고는 (실제로는 아버지에 의해 카스트라토가 되었다고 한다) 형을 떠나 궁중에서 왕에게 노래를 해주는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형제는 극적인 화해를 한다.




https://youtu.be/LuYCpf7Jo8s

이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파리넬리가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부르는 모습을 보던 헨델은 쓰러질 정도로 감격을 한다. 아름다운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그가 겪어야 했던 삶이 오버랩되면서 아픔과 감동이 동시에 찾아오는 명장면이다.





이 사람은 영화의 모델이 된 카를로 브로스키이다. 파리넬리의 형이었던 리카르도 브로스키도 실제로 작곡가였다. 영화 속에서는 평범한 작곡 실력을 가졌으며 동생을 통해 명예와 부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꽤 존경받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에 대해 남은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말 영화에서와 같은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다. 카를로 브로스키는 실제로도 부와 명성을 얻었으며 쌓아놓은 재산으로 편안하게 살다 생을 마감하였다.


영화 속에 나오는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카운터테너 데릭 리 레이진의 저음부와 소프라노 에바 말라스 고들레브스카의 고음부를 합성해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17세기에는 현란한 기교를 구사하는 카스트라토가 유행했지만 18세기 후반에는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창법이 각광받게 되어 카스트라토는 사라진다. 그래서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되었던 곡들은 여성이 대신 맡아서 불렀는데, 바지를 입고 남성의 배역을 한다고 해서 '바지역(trouser role)'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이 남성의 배역을 하는 것을 어색하게 보기 때문에 여성 가수들 대신 카운터테너들이 맡아서 부르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 찰리 채플린

이 영화를 통해 '카스트라토'라는 성악가들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카스트라토 가수로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어서 주로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가정에서 많이 길러졌으며 소년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모님에 의해 수술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카스트라토로 성공한 사람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카를로 브로스키를 포함하여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의 카스트라토들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아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희생을 감행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에 불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대의 빈곤한 가정과 신분 상승의 좁은 문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어쩌다 운이 좋아 명성을 얻는다고 해도 타인의 의지로 인해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을지도 모른다. 성공한 카스트라토의 뒤에는 인내해야 할 시간과 고난이 함께 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카스트라토의 삶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1994년도에 나온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파리넬리의 노래로 가득 차 있어 한 편의 공연을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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