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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Apr 18. 2017

[영화] 화차(火車)

무엇이 그녀를 불 수레에 오르게 했을까


'화차(火車)'는 악인을 싣고 지옥으로 가는 불 수레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구한 삶에 떠밀려 이에 오르기를 자처한 여인을 영화에 담았다.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세 사람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되어 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문호와 선영은 안동에 사시는 문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 휴게소에 잠깐 들러 문호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선영은 전화 한 통을 받고 종적을 감춘다.



문호는 실종 신고를 한 뒤 그녀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 파산 신고를 한 적이 있다는 점, 어느 회사의 총무과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이력만 알고 있던 터라 수소문할 길이 막막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 한다.



자신의 영역 밖이라고 생각한 문호는 전직 경찰인 형에게 그녀를 찾아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해서 차경선이라는 본명, 한 번의 결혼 실패, 불우한 어린 시절을 알게 된다.



경선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항상 사채업자들로부터 위협을 받았고 전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나서도 협박은 계속되었다. 상속 포기 신청으로 빚을 떠안지 않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실종된 후 5년이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하루도 버티기 힘든 경선에게는 버겁기만 했다. 결국 이혼한 뒤 사채업자들에 의해 술집에 넘겨졌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였고 어렵게 서울로 상경하여 살아간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차경선은 강선영의 이름으로 살 수 있었을까. 그녀가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별 문제 없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경선은 다른 사람의 인생이 필요했고, 연고 없이 혼자 지내며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여성을 상대로 접근하여 살인을 했다. 강선영으로서 살며 문호와 결혼하려고 했지만 진짜 강선영이 파산했던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자신의 정체가 알려질까봐 행적을 감춘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약혼자의 민낯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문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경선이라는 여자를 이해해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살인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호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던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스스로 불 수레에 오르는 경선을 저지할 따뜻한 손길은 없었다. 만일 경선이 강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살기 전에 문호를 만났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문호는 강선영이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결혼을 꿈꾼 것이 아닐까. 경선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전 남편과 다르게 어려움까지 받아들였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나서도 끝까지 경선을 사랑하는 문호를 보니 안타까웠다.

경선이 겪어야 했던 일들이 너무 가혹해서 살인을 저지른 그녀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파산 사실이 알려졌다고 해도 그에 대해 대충 둘러대고 계속 강선영으로 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진짜 강선영과, 아무것도 모르는 문호에 대한 죄책감으로 찝찝함을 남겼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 속의 이야기라 다행이다. 하지만 경선이 겪은 일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해서 마음이 좋지 않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조차 없이 구석으로 몰아넣는 사회가, 그 속에 갇힌 사람이 발버둥 칠 대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을 보니 씁쓸함이 남는다. 현실에서의 경선은 화차에 몸을 맡기기 전에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어릴 때에는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을 만든다는 것이 의외로 힘든 일임을 안다. 그저 남들처럼 살면서 행복하고 싶었던 차경선을 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 평범함 속의 행복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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