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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로빈 Dec 23. 2017

그러나 봄은 왔다.  

어느날 갑자기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
이 말은 만고의 진리다.

그러나 문제는
자연의 봄은 정확히 시간을 지켜오지만
인생의 봄의 리듬은 아주 불규칙하다는 점이다.

빠를 때도 있고, 아주 영원히 안 올 것 같이 느껴지는 때도 있다.
일제시대 때 많은 독립투사들이 늦은 봄을 참지 못해 기다림을 포기했다.

그러나 봄은 왔고, 그것은 기적처럼 갑자기 왔다.

- 김대중 잠언집, '배움' 중에서 


올 한 해에는 한국사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생 때 어려워했던 과목 중 하나여서 졸업과 동시에 머리에 남은 것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공부하는 동안 내가 이렇게도 몰랐나 하며 놀라움 반 자괴감 반이 되기도 했고 그래도 지금이나마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근현대사로 오기까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은 일제시대였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외울 것이 참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명칭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대한광복회가 나왔는데 뒤에 대한독립군, 한국독립군, 한국광복군이 나오고, 조선혁명당이 있는데 또 민족혁명당이 있었다. 김규식, 신규식, 양세봉, 김두봉, 김지섭, 박재혁 등등... 비슷하거나 몰랐던 이름이 많았다. 혼자 스토리도 만들고 외울 수 있는 규칙을 만들며 나름 고군분투를 했다.

둘째로는 한국사람으로서 답답함을 느꼈다. 1910년도부터 시작한 일제시대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화가 나고 슬펐다.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었고, 많은 활동들이 제지를 당했다. 처음에는 열렬히 독립을 꿈꾸었던 사람들마저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의 편에 서거나 침묵하기 시작했다. 혹은 일본의 통치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부흥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오늘 오후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독립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미래인이 되어 그 시대를 엿보는데도 마치 결과를 모르는 사람처럼 암담한데 당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독립을 향해 계속 걸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았다. 한 예로,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대를 찬양한 한국의 시인은 독립 이후에 책임을 묻자 '이렇게 일찍 해방될지 몰랐다'라고 답했다. 


다행히 봄은 왔다. 독립한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쓰고 애국가를 부르며 어디에서나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에는 과연 이런 날이 올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중국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촌'이라고 불리는 한인들이 밀집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있던 학교에 방문한 독립운동가들은 학생들이 태극기가 게양된 아래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태극기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4살 된 조카의 손을 잡고 기념일에 걸린 태극기 아래를 걸으며 저기 보이는 것이 태극기라고 알려줄 때, 초등학생들이 미술시간에 태극기가 그려진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를 들고 하교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아무리 무언가를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과를 맛보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수없이 부서졌던 계란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이렇게 되려고 그때 실패했던 거구나, 이것을 위해 내가 지금까지 마음고생을 해왔구나 하는 것이다. 미래에 맞이할 봄을 위해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또 치며 살아간다. 35년에 걸친 일제시대의 아픔을 딛고 지금의 일상을 찾은 것처럼 봄은 언젠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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